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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지촌,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기사승인 2023.05.29  15: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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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문학속에 나타난 기지촌(基地村)

현대문학의 장르로 등장한 용어로 해방과 한국전쟁으로 인하여 주한미군들이 주둔한 지역에 형성된 기지촌을 배경으로 이전엔 없던 사회적 증상을 작가들의 상상력과 르포식으로 문학적 소재로 형상화한 참여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군의 주둔은 세계적인 추세로 그들의 친구가 되어준 여성들의 이야기들중 '브루라이트 요코하마' 로 대중가요로 '게이샤의 추억'은 영화로도 만들어져 흥행을 이룬 바 있다. 우리와 차이는 2차 대전으로 패배한 일본에 점령군으로 자리잡은 군정으로 일본은 전범국가임에도 빠르게 국제사회에 복귀하게 된다.

이는 1950년 일어난 한국전쟁으로 미국은 일본을 거점으로 하여 군사기지와 물자등을 배송하는 배후도시로 일본의 산업은 호황을 이루게 된다. 당시 미군의 히로시마나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폭으로 철저하게 파괴된 도시와 산업이 회생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이 전쟁의 의미를 공산주의읜 남진과 동북아의 자본주의 시장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전범국가 일본을 샌프란시스코 회의를 통하여 결정한다. 피해자 중국과 한국의 동의 없는 일방적 국제사회 복귀로 일본은 반성도 보상도 면제 받아 미국의 가장 큰 은혜를 입었다.   

1945년 해방후 남한에 미군부대가 진주하면서 생겨난 기지촌은 미국이라는 거대 제국과 한국이라는 신식민지 사이의 지배와 저항, 오리엔탈리즘과 옥시덴탈리즘 사이의 대립, 군인이라는 남근과 소위 ‘양공주’ 사이의 이루어지는 여성 섹슈얼리티의 상품화, 인종간 차별, 아메리칸 드림, 미군과 기지촌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아메라시안’), 국제결혼과 그에 따른 디아스포라, 가족의 생계를 위한 여성을 매춘으로 내모는 남근주의적 질서 등 수많은 사회적 병증을 내포한 상징적인 공간으로 자리한다. 이에 처음으로 이를 사회화 시킨 것은 자유로운 창작에 종사하는 문학인들이다. 한국소설은 기지촌 주변의 풍경들과 기지촌 바깥으로까지 확장되곤 하는 상상력을 보였으며 그 결과 기지촌 소설은 해방 이후 굳건하게 한국소설의 중요한 계보로 자리해오고 있다는 평이다.

   
 

연원 및 변천
기지촌이란 사전적으로는 ‘외국군 기지 주변에 형성된 촌락’ 일반을 일컫는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기지촌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냈고 또 한국 사회에 압도적인 의미를 지닌 것은 다름아닌 해방 이후에 진주한 미군부대였고, 그런 까닭에 한국문학사에서 기지촌소설은 미군부대 주변에 형성된 촌락인 기지촌을 배경으로 한 소설들을 지칭한다.

해방 이후 한국에 진주한 미군부대는 진주하는 순간부터 여러 상징적인 의미를 행사한다. 미군들이 진주하면서 서서히 기지촌이 형성되고, 그러자 생계를 위해 수많은 한국인들이 어쩔 수 없이 미군부대 주변으로 몰려들어 ‘양공주’가 되거나 아니면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물자들로 생계를 이어갔다. 그래서 그곳은 해방 이후 한국인이 겪어야 했던 가난과 곤란과 비교하자면, 물질적 풍요와 높은 문명이 있는 꿈같은 곳이기도 했고, 그런가 하면 오리엔탈리즘적 오만과 편견이 넘치는 치욕의 땅이기도 했다. 이 낯설고 오만한 손님들이 모인 터전인 기지촌은 한편으로 환대의 대상이기도 하고 또한 적대감의 원천으로 작용하면서 자기동일성에 갇혀 있던 한국 사회를 충격한다.

기지촌의 이러한 상징적인 의미 때문에 또 기지촌의 양면적인 속성 때문에 해방 이후부터 기지촌소설이라 부를 만한 소설들이 다양하게 씌어졌거니와 그 기치촌을 바라보는 시각도 여러 차례 큰 굴곡을 보인다. 초기 기지촌 소설들이 주로 가난을 이기기 위해 기지촌이라는 물질적 풍요의 땅으로 부나비처럼 질주하는 부조리한 존재들을 부각시켰다면, 미국의 제국주의적 성격에 저항하던 196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는 미군(혹은 미국)의 새디즘적 폭력성이 전면에 포진한 기지촌소설이 압도적이었다가, 최근에는 페미니즘의 영향으로 미국이라는 제국과 한국 특유의 남근주의적 질서 탓에 (타인을 위해 혹은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숭고한 희생양이기는커녕 쓸모없는 실존으로 격하된 그곳 민중들, 그중에서도 특히 ‘양공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거나 또 뒤늦게 애도하는 소설들이 많이 발표되고 있다.

   
 

내용

해방 이후 한국사회의 엄연한 현실로 자리한 기지촌은 밝은 면보다는 어두우 면, 성스러운 곳이라기보다는 치욕의 장소였다. 한마디로 나라가 약해 스스로 해방을 이루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전쟁을 치르고도 국가적 자립을 이루지 못해 겪어야 했던 한국 사회의 모든 상처가 집약된 곳이었다. 한국사회가 이 엄연히 존재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은 기지촌을 외면할 때, 한국소설은 해방 직후부터 이 기지촌에 깊은 관심을 가지는 한편 그곳에서 한국 사회의 사회적 관계적 총화를 끊임없이 읽어내 왔다.

해방 이후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의 기지촌소설들은 주로 해방 후, 혹은 전쟁 직후 극한상황에 가까운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미군부대라는 물질적 풍요에 자신의 몸과 영혼을 파는 부조리한 실존에 초점을 맞춘다. 이 시기 기지촌 소설들은 스스로 상품이 되는 이 부조리한 삶에 절망하고 환멸을 느끼나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어떠한 길도 찾지 못하는 인물들을 집중적으로 그리고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아마도 한국전쟁 직후 당대인이 느꼈음직한 원죄의식과 환멸,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남을 죽이고 살아남았다는 죄의식과 자신 혹은 자기 가족(특히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상품화해서라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들의 환멸이 반영된 탓일 것이다.

이 때문에 이들 작품은 기지촌에서 벌어지는 모든 폭력성과 부조리한 현상들을 자기의 원죄로 받아들이고 그 원죄를 씻어야 한다는 듯 그 모든 고난을 묵묵히 감내하는 모습을 주로 그려낸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소설로는 채만식의 「낙조」, 오상원의 「균열」, 「난영(亂影)」, 「황선지대」, 손창섭의 「층계의 위치」, 송병수의 「쇼리 킴」, 강신재의 「해방촌 가는 길」, 남정현의 「경고구역」, 선우휘의 「깃발없는 기수」, 권태웅의 「가주인산조(假主人散調)」, 하근찬의 「왕릉과 주둔지」 등이 있다.

   
 

그러나 1960년대 중반 이후 한국소설이 그려내는 기지촌 풍경은 현격하게 변화한다. 이 시기의 소설은 기지촌에서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폭력과 병리적 현상들을 더 이상 인간 자체의 원죄에서 찾지 않는다. 대신 미군(미국)의 오리엔탈리즘적인 오만과 편견, 제국주의적 폭력성에서 찾기 시작한다. 이런 커다란 변모를 가져온 작품은 남정현의 「분지」이다. 「분지」 이후 미군 혹은 미국의 제국주의적 폭력성에 관심이 고조되면서 기지촌소설 속의 기지촌은 미국이라는 제국주의적 권력이 노골적으로 작동하는 공간으로 변화한다.

다시말해 제국주의적 오만과 편견으로 무장한 미군들이 한국의 민중들, 그중에서도 특히 섹슈얼리티를 상품화해서 (가족들의) 생계를 이어가는 ‘양공주’들을 새디즘적으로 학대하는 장면들이 전면화되며, 또 그런 만큼 미군들에 대한 저항 혹은 ‘반미’의 목소리가 전면에 깔리기 시작한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기지촌소설로는 남정현의 「분지」를 필두로, 천승세의 「맨발」, 「황구의 비명」, 신상웅의 「분노의 일기」, 이문구의 「해벽」, 윤흥길의 「돛대도 아니달고」, 조해일의 「아메리카」, 오정희의 「중국인거리」, 전상국의 「아베의 가족」, 강석경의 「낮과 꿈」, 정도상의 「여기 식민의 땅에서」, 그리고 윤정모의 「고삐 1」, 「고삐 2」, 안정효의 「은마는 오지 않는다」 등이 있다.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 시기는 또한, 베트남파병이 있던 시기로 베트남의 기지촌 풍경이 한국소설의 주로 배경으로 등장하는 이 또한 기지촌 소설의 중요한 성과라 할 만하다. 베트남의 기지촌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로는 박영한의 「머나먼 쏭바강」, 이상문의 「황색인」, 황석영의 「무기의 그늘」, 안정효의 「하얀 전쟁」 등이 있다.

1990년대 후반, 그리고 21세기 들어 기지촌 소설은 또 한 차례의 양적,질적 변화를 보인다. 1990년대 중반 기지촌 소설에 페미니즘적 시각이 도입되면서 소위 ‘양공주’들의 삶을 더 이상 새디즘적인 미군만의 폭력이 대상이 아니라 철저하게 남근주의적인 한국 사회의 ‘호모 사케르’들로 바라보는 소설이 다수 씌어지기 시작한다. 즉 기지촌의 민중들, 그중에서도 특히 ‘양공주’들은 (타인을 위해 혹은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죽임을 당해도 상대방이 처벌을 받지 않는 벌거벗은 생명으로 전락해 있는 바, 이는 전적으로 미국이라는 제국과 한국 특유의 남근주의적 질서에 연원하는 것이라는 인식틀이 생겨난 것이다.

또 하나 특징적인 것은 최근의 기지촌 소설들은 이들 매춘 여성으로 상징되는 기지촌 민중들에 가해지는 전방위적인 억압과 감시를 밝혀내는데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이들의 고통과 희망 속에서 한국 사회의 갈 길을 찾는 적극적인 모색도 행한다는 점이며, 이 지점이 현재 한국이 기지촌 소설이 도달해 있는 자리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이러한 경향을 보여주는 기지촌 소설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안일순의 「뺏벌」, 복거일의 「캠프 세네카의 기지촌」, 윤이나의 「베이비」, 김중미의 「거대한 뿌리」, 정철훈의 「카인의 정원」 등이 있다.

   
 

의의와 평가
기지촌 소설의 무엇보다 중요한 의의는 무엇보다 해방 이후 한국사회의 엄연한 현실이었지만 너무 치욕스러운 장소이었기에 원초적으로 억압하고자 했던 공간인 기지촌의 삶과 고통, 희망을 텍스화했다는 점에 있다. 이를 통해 한국의 기지촌 소설은 한국 사회의 보다 근원적인 상처를 전면에 드러내고 그 안에서 상처를 상처로 인정받지 못하는 수많은 민중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준다. 문학이, 그리고 소설이 발언권을 지니지 못한 존재들의 목소리를 들어주고 대신 옮겨주어 결국 진저으로 인간다운 삶을 가능케 하는 역할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이라면, 기지촌 소설은 문학의 그러한 기능을 가장 치열하게 수행한 소설적 계보라는 점에서 큰 가치와 의의를 지닌다.

   
 

미군의 해외 주둔

제2 차 세계대전이 종료된 후 1200만에 달하는 군대를 평상시에도 유지하기에는 힘이 드니까 미군은 빠른 군축을 감행하여 6.25 전쟁 직전에는 현재와 비슷한 150만 정도의 규모를 유지 한다. 독일군을 상대하며 완성된 육군과 일본군을 상대하며 완성된 해군, 그리고 육해군 항공대 운용 경험을 살려 창설한 공군, 이렇게 완비된 현대의 미군은 6.25 전쟁에서 북한군을 압살했으나 방심으로 인해전술을 몰고오는 중공군에게 패퇴하기도 했으나 보병 행군경시를 고치고 포병화력을 늘려 다시 주도권을 잡아서 현 분단선까지 밀고 올라왔다.

6.25이후 더이상 해외 전쟁에 참여 안하려 했으나 통킹만 사건으로 다시 분노한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도 뛰어들었고 여기서도 호되게 당하며 범죄가 일어나는 등 망신을 사고 자신들보다 약한 북베트남에게 최종적으로 패배하는등 망신을 당했으나 자동소총의 중요성과 헬기 기동전술, 밀림지형 교리를 확보해나갔다. 그러나 공산주의와의 대결이 소련의 붕괴로 냉전이 끝났지만 세계을 시장으로 한 자본주의 국가 미국의 국익에 의한 저강도전쟁(전면전이 아닌 국지전을 통한 미군수 물자 팔기)전략과 군산복합체제로 한편으로는 평화을 추구하면서도 분쟁에 참가한다. 

징병제서 모병제로 전환한 미국은 막강한 군사비 증가는 천문학적이다. 병사 1인당 1년 비용이 1억이 소요된다고 한다. 따라서 걸프전의 실패와 아프카니스탄에서의 철군등에서 보듯이 미군은 정치적으로 참관을 했다가 정권이 바뀌면 철수를 하는 식이다. 월남전도 그렇고 미국은 한국전 외에는 해외 참전에서 모두 실패했다. 예전처럼 서방의 이익은 지키되 그 외에는 불간섭주의로 돌아가는 듯 하였으나 이슬람 테러단체 알카에다가 벌인 9.11 테러가 터지면서 극대노한 미국은 아프간 전쟁-이라크 전쟁을 연달아 벌이면서 결국 여전히 미군은 전세계로 전력을 투사하고 있다.

현재의 미군
현대의 미군은 전 세계를 활동영역으로 삼고 있다. 국력이 받쳐주는 까닭에, 자국민 보호나 이익문제로 관여해야할 때 전 세계 어디로든 가서 활동할 수 있다. 이미 1차 걸프전 때 지구를 반 바퀴 돌아 사우디아라비아에 50만 가까운 병력을 집결시켜 출격한 사례가 있고, 아프가니스탄서도 수년간 전투를 지원하였다. 다른 나라는 실험과 훈련을 통해 데이터를 구축하고 장비를 강화한다면, 미군은 그와 비교할 수 없는 실전을 통해 데이터를 구축하고 장비를 강화한다. 이러한 점은 미군이 현대 군사과학의 선두주자가 될 수 있는 큰 배경이 되고 있다.

영국, 독일, 이탈리아, 일본, 한국, 아프가니스탄 같은 나라에 주둔 중이며, 최근에는 러시아에 가까운 독립국가 연합국들에도 하나둘씩 소규모 기지를 건설하여 러시아와 중국 양쪽을 견제하려 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필리핀 등에는 이전에는 주둔했으나 이제는 철수했는데 다시 주둔한다고 한다. 사우디아라비아야 원래 미군이 있으나 없으나 크게 상관 없다지만, 필리핀은 1995년 수빅만 미군기지 철수 후 미군기지에 의존하던 지역경제가 막장으로 치달은 경험이 있기도 하다.

2011년 현재 전세계 100여개국에 약 700개의 미군기지를 운영중이다. 한국, 독일, 일본처럼 대규모 전투부대가 주둔하지 않더라도 통신감청시설, 레이더기지, 비행장 등 소규모 기지는 세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2015년 용산기지와 동두천 및 의정부의 2사단 등 수도권내 미군이 평택기지로 통합되 평택으로 이전한 후  미국 국내를 포함해서 세계 최대규모의 단일미군기지라고 한다. 그러나 미군은 주둔비 증액등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손해는 아니다. 또 계속되는 신무기 최대 수입국으로 사실상 우리 돈으로 미군 주둔을 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미군철수를 주장하는 이들의 주장이 이념적 색채만 뺀다면 국익보단 미국 이익이 더 크다 말할 수 있다. 미국이나 민간인이 투자한 돈이나 합작회사 시장성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가장 크고 활실한 시장으로 사실 한미간의 무슨 조약이 없어도 한국전쟁 처럼 자동개입이 되는 곳이다. 왜냐 미국은 한국을 지켜내야 자국의 재산과 시장을 지켜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에 대하여 하나도 겁내고 아쉬운 소리를 할 필요가 없는 것이 국제전문가들의 주장이다.  

반환 미군기지의 흔적을 찾아서 신상수 작가의 르포 글

커튜사 출신의 작가는 실제로 미국 506 보병(일명 밴드오브 브라더스)의 부대로 영화화되여 크게 히트한  '라이언 일병 구하기' 의 부대 출신이라고 한다. 수색대 소총병 출신의 카투사로 복무한 후 20년동안 자신의 경험과 자료를 연구 조사한 르포이다. 그는 200여곳의 반환된 200여곳의 주한 미군 주둔지와 인근의 기지촌을 답사하고 쓴 탐사보고서다. 

   
   
 

 

유재무 편집인 ds2sg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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