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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A총회 인도 코타얌에서

기사승인 2023.06.13  22:5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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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기독교협의회(CCA) 총회

'15th General Assembly Assembly Theme and Sub-themes Theme: God, Pamoh Renew Us in Your Spirit the and Restore Restore the Creation and CCA 15th Spirit General Your Assembly God, Renew Usin Sub-themes: Affirming the Will of God (Romans 15:5-6; Psalm 143:10) Dwelling in Harmony with Creation (Isaiah 65:25) Attaining Life in Its Fullness (John 10:10)'

   
 

아시아기독교협의회(CCA) 15차 총회 주제/“하나님, 당신의 영으로 온 피조물을 새롭게 하소서”
"God, Renew Us in Your Spirit and Restore the Creation"

* 일시: 2023년 9월 27일(수) - 10월 4일(수)
* 장소: 인도 케랄라 주 코타얌 씨티(인도 남부) * 참가비: (신청 후 CCA에서 개별 이메일 안내)
1) 등록비: USD 200불(총회기간 중식/석식 제공)
2) 항공비 및 현지 체재비: 참가자 부담, (숙박 1일 기준 5-6만원 예상, 조식 포함)
3) 도착: 인도 코치(Cochin) 또는 트리반드룸(Trivandrum) 공항서 총회장소까지 셔틀버스 무료운행

   
 

* 총회 사전대회: 여성/청년대회: 2023년 9월25일(월)-28일(목)
* 아시아 에큐메니칼 신학원: 2023년 9월13일(수)-10월5일(목)

쳐차 'Churcha'(인도어로 ‘대화’) 프로그램은 WCC부산 총회 ‘마당’ 칼스루에 총회 ‘브룬넨’과 같이 각 지역 교회와 이슈를 소개하고 나누는 공간의 의미로 워크숍과 전시회, 네트워킹 존 등 다양한 부대행사가 열릴 예정입니다. 더불어 ‘한반도종전평화캠페인(Korea Peace Appeal)’ 부스가 총회기간 중 운영될 예정

CCA총회는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교회의 지도자들과 신학자, 선교동역자, 시민사회활동가와 더불어 이웃종단 동료들과 만나 소통하며 아시아 각 지역의 살아있는 문화와 전통, 소중한 교회일치운동의 역사와 현재를 경험할 수 있는 나눔과 연대의 자리입니다. 한국 에큐메니칼 공동체의 많은 관심과 참여바랍니다.

            문의) 02-764-0203 / ncckintl@kncc.or.kr, NCCK 국제협력국 간사 김민지 목사

   아시아기독교협의회(CCA)와 한국교회

 

이 원고는 안재웅박사가 "아시아 속의 한국교회" 라는 제목으로 기독교사상 2016년 12월호에 올린 것을 필자의 허락을 받아 소개한다. 안박사는 세계기독학생연맹(WSCF) 아시아태평양지역 총무로 19년간 홍콩에서 근무했다 이후 제 7대 CCA총무를 지내고 기사연 원장과 호서대학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는 (재)한국YMCA전국연맹유지재단 이사장으로 있다. 

   
                                    * 지난 해 한국을 방문한 CCA총무 죠지 매튜박사와 함께한 한국교회 에큐메니칼운동 인사들(앞줄에 앉아있는 원로들 김영주,박경서,박상증,매튜,안재웅박사) 

아시아교회 이해
매튜(Koshy Mathew)는 그의 저서 Roots and Wings: Frequently Asked Questions About the Mar Thoma Church(2004)에서 여러 전승을 바탕으로 아시아 최초의 교회는 인도의 성도마(Mar Thoma)교회라는 사실을 밝혔다. 매튜에 따르면 예수의 제자 가운데 하나인 도마가 52년 인도의 남부 케렐라 지방에 와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고 일곱 처소에 교회를 세웠다고 한다. 도마는 첸나이(마드라스)까지 올라가서 복음을 증거하다가 순교했다고 하는데, 이와 같은 사실을 증명할 만한 역사적 자료는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전설이나 유품과 유적 등을 토대로 확증을 삼을 뿐이다. 도마가 순교한 첸나이 언덕 중턱에는 도마기념교회가 세워져 있다. 성 도마교회는 182-189년쯤 이미 많은 교인을 확보하였고, 도마로부터 전수된 기독교 의식과 전통을 그대로 지키면서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놀라운 것은 최초의 에큐메니컬 공회가 325년 니케아에서 열렸을 때 성도마교회의 존(John) 주교가 이 회의에 참석한 사실이다. 성 도마교회는 현재 세계교회협의회(이하 WCC)와 아시아기독교협의회(이하 CCA) 회원교회로 활약하고 있다.
히클리(Dennis Hickley)의 저서 The First Christians of China(1980)를 보면, 635년 중국의 당나라 때 경교(景敎)가 소개되었다는 사실을 비문 해독을 통해 알 수 있다. 1625년 한 수도원에 방치되었던 비석의 비문은 이와 같은 사실을 명확하게 확인해준다. 이 수도원은 638년에 건립되었다.
아시아 개신교회는 대체로 서방 선교사들에 의해서 전래되었다. 이들은 교회를 세우고, 학교와 병원, 기독교 기관과 사회봉사 기관을 세우는 등 서구 문명의 가교 역할을 하였다. 한국도 YMCA, 대한성서공회와 대한기독교서회 및 기독교방송(CBS) 등이 선교사들이 주도해서 만든 기구들이다.
닐(Stephen Neill)의 명저 A History of Christian Missions(1964)를 보면 개신교 서방 선교사들이 아시아 여러 나라에 선교하면서 교회를 세운 사실이 확인된다. 즉 인도(1793), 스리랑카(1804), 중국(1807), 미얀마(1813), 태국(1831), 인도네시아(1833), 일본(1859), 한국(1884), 필리핀(1899), 라오스(1902), 베트남(1911), 캄보디아(1911) 등에 교회가 세워졌는데, 이는 각국의 해외선교 정책에 따라 파송받은 선교사들이 이루어낸 성과라 하겠다.
1938년 인도의 마드라스 근교 탐바람에서 개최된 국제선교협의회(International Missionary Council, 이하 IMC)는 극동아시아 사무국 설치의 필요성을 집중적으로 토의하였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으로 소강상태를 겪다가 1946년 IMC 회의 때 극동아시아 사무국 설치에 합의하게 된다. 1947년에는 정식으로 사무국을 설치하고, 인도의 마니캄(Rajah B. Manikam)을 의장으로, 그리고 중국의 륭(S. C. Leung)을 서기로 뽑아 아시아교회의 일치와 협력의 새로운 장을 열게 된다. 1948년 마닐라에서 후속 모임이 개최되었고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인도, 한국, 태국교회 대표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IMC의 닐(Stephen Neill)과 랜슨(Charles Ranson) 총무는 이 모임에 참석하여 또 하나의 지역 에큐메니컬 기구의 탄생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에큐메니컬 운동은 WCC를 중심으로 제네바에서 주도하는 것으로 족하다는 입장을 강력하게 피력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견제는 아시아 에큐메니컬 운동 지도자들의 기개를 꺾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마닐라 모임 이후, 같은 해에 중국의 항저우에서도 계속 모임을 가질 예정이었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서 방콕으로 옮겨 회의를 계속하였다. 이 회의에서 36명의 아시아교회 대표들은 아시아를 묶는 에큐메니컬 기구를 설치하기로 합의하고, 마니캄을 IMC 동아시아 간사로 뽑았다. 그는 1954년 홍콩에서 아시아에큐메니컬선교협의회가 조직되면서 실무 책임자로 일한 후 1956년 인도 루터교회 주교로 임명되자 세계기독학생연맹(WSCF) 부총무인 쵸탄(U Kyaw Than)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떠났다.
쵸탄은 미얀마 출신의 평신도로 기독학생운동의 지도자이면서 더불어 아시아 에큐메니컬 지도력 훈련 프로그램을 주도한 인물이다. 그는 1955년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열린 아시아 아프리카 정상회의에 큰 자극을 받는다. 특히 반둥대회의 평화 5원칙, 즉 (1) 영토주권의 상호 존중, (2) 상호 불가침, (3) 내정 불간섭, (4) 평등 호혜, (5) 평화 공존이 좋은 가이드라인이 된다고 판단하였다.

아시아기독교협의회 이해
근현대 에큐메니컬 운동의 분수령은 1910년 에든버러에서 개최된 세계선교대회라 할 수 있다. 이 대회에는 1,200명의 대표가 참석했는데 서방교회 대표를 제외한 17명은 모두 아시아 사람이었다. 이때 윤치호는 미국에 유학 중이어서 미국 남감리교 대표의 한 사람으로 참석하였다. 한국교회는 이 역사적인 세계선교대회에 참석함으로써 에큐메니컬 운동의 한 획을 긋게 되고 지금까지 국제적 연대와 선교협력을 면면히 이어오고 있다. 아시아교회 대표들은 에큐메니컬 선교정책협의회, 지도력 개발 프로그램, 그리고 상호 교류 프로그램 등에 참석하면서 세계교회는 물론 다른 아시아교회 지도자들과 가까워졌다.
그러나 아시아교회 지도자들은 에큐메니컬 운동이 서방교회의 주도로 이루어지는 것을 크게 우려하여 아시아교회를 묶어 아시아에 적합한 에큐메니컬 운동을 이끌어 보자는데 공감하게 된다. 결국 1949년 방콕에서 동아시아기독교협의회(Eastern Asia Christian Conference, 이하 EACC)라는 이름으로 모여 36명의 아시아교회 대표들이 참석하였다. WCC 대표와 유럽교회 및 미국교회 대표들도 옵서버로 동참하였다. 이 회의에서는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를 아시아에 포함시킬 것인지를 신중하게 검토하였다. 결국 성공회 시드니 교구 모웰(Howard Mowell) 대주교의 요청으로 두 나라는 초창기부터 아시아교회 회원국이 되었다. 그 후 1957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의 푸라팟에서 CCA의 전신인 EACC 창립준비대회를 갖게 된다. 한국교회는 당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이하 NCCK) 총무인 유호준 목사, 교단 대표로 전필순 목사와 유형기 감독 등 몇 사람이 참석하였다.
쵸탄은 EACC 창립준비위원회 조직 간사로 활약하면서 아시아교회의 선교적 과제를 중심으로 아시아 에큐메니컬 기구설립에 박차를 가했다. 마침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지역 ‘교회의 날’ 행사와 겹쳐 10만 명의 교인들이 운집하였다. 이때 수카르노(Soekarno) 대통령은 ‘교회의 날’ 행사에 참석한 자리에서 인도네시아의 5대 건국 이념인 ‘판차실라’(Pancasila)를 소개하고 ‘Gotong Royong’, 즉 ‘공동 과제’를 함께 실천해가자고 호소하는 등 큰 감명을 주는 연설을 하였다.
프라팟 준비대회는 아시아의 15개국에서 107명의 총대가 참석하였고, 서방교회에서도 8명의 대표가 방청하였다. 하지만 중국교회 대표는 정치적인 상황으로 인해 불참하였다. 개회 설교는 스리랑카의 나일스(D. T. Niles)가, 강연은 파키스탄의 레이(Chandu Ray)와 인도의 토머스(M. M. Thomas)가 각각 종교의 다양성과 기독교의 경건성을 역설하면서 새롭게 성장하는 아시아에서의 선교적 과제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프라팟 준비대회는 “우리가 갈라지면 할 수 없는 일도 함께라면 할 수 있다.”(We can do together what we cannot do separately.)라는 말을 앞세워 아시아교회의 단결을 강조하였다. ‘Life Together’가 프라팟 준비대회의 모토였다.
프라팟 준비대회는 ‘변화하는 동아시아에서의 그리스도인의 과제’를 다섯 가지로 선택하여 집중 토의하였다. 요약하면 (1) 아시아교회의 에큐메니컬 운동 참여와 활성화 문제, (2) 신생교회 간의 상호협력을 통한 발전 모색, (3) 기독교 선교의 방향 설정, (4) IMC와 WCC가 참여하는 공동의 아시아지역 사무국 설치문제, (5) 세계평화와 새 질서 증진의 과제라 말할 수 있다.
프라팟 준비대회는 필리핀의 소브리페나(Enrique C. Sobrepena) 대주교를 의장으로, 인도의 모세(D. G. Moses)를 부의장으로 추대하였다. 그리고 스리랑카의 나일스(D. T. Niles)를 총무로, 쵸탄(U Kyaw Than)을 부총무로, 뉴질랜드의 브래쉬(Alan A. Brash)를 구호전담 실무자로 선임하였다.
WCC의 비서트 후프트(Willem Vissert Hooft) 총무는 EACC 창설을 우려한 인물이다. 그러나 반둥대회가 비동맹국가 간 세력을 결집한 것처럼 EACC도 아시아교회가 힘을 합쳐나갈 지역 에큐메니컬 기구라는 점에서 환영한다는 견해를 뒤늦게 표명하였다. 이렇게 해서 EACC 창립준비대회를 마침으로써 세계 최초의 지역 에큐메니컬 기구(Regional Ecumenical Organization)가 탄생하게 되었다. EACC는 아시아교회가 ‘함께 살고’(Life Together), ‘함께 일하는’(Work Together) 에큐메니컬 기구로서의 진면목을 보여주게 되었다.
프라팟에서 열린 EACC 창립준비대회는 모든 준비를 마치고 1959년 5월 14-26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창립총회를 소집한다. 참가국의 범위는 파키스탄을 서남의 끝으로, 일본을 동북의 끝으로,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를 남쪽의 끝으로 하였는데, 14개국 48개 교회 대표들이 모여 창립총회를 열었다. 아프리카와 유럽, 미국교회 대표들도 동석해서 축하해 주었다. 창립총회의 주제인 ‘Witnessing Together’를 통해 복음의 증거가 아시아기독교협의회의 과제임을 시작부터 부각시켰다. EACC는 초창기에 세 가지 중요 정책을 실천과제로 의결하였다. (1) 아시아 그리스도인들이 보다 친밀하게 주기적으로 만나고, (2) 교회로 하여금 상황에 대응하는 신학을 발전시키며, (3) 아시아교회들이 보다 효과적인 에큐메니컬 사고와 운동에 참여한다는 ‘Witnessing Together’에 역점을 두기로 하였다.

당시 공산화된 중국, 사회주의 노선을 따르는 인도차이나 국가, 독재정치가 기승을 부린 여러 아시아 신생국들의 현실을 감안한다면 EACC의 창설은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다짐하는 대담한 출발이었음을 알 수 있다.
EACC 창립총회장에는 다음과 같은 큰 현수막을 달아놓았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 2:5) EACC 창립총회 때가 바로 성령강림 주간이어서 많은 참석자들은 새로운 성령의 임재를 간절히 기도하였다. 이는 마치 예수의 제자들이 체험한 성령의 뜨거운 경험을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EACC는 창립준비대회로부터 창립총회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복음의 증거와 교회의 선교적 사명을 다하고자 다짐하는 아시아교회의 결단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Life Together’, ‘Work Together’, 그리고 ‘Witnessing Together’가 EACC/CCA의 키워드가 되었다.
당시 모트(John R. Mott) 기념강좌를 총회 기간에 개설하고 비서트 후프트와 뉴비긴(James Edward Lesslie Newbigin)을 강사로 하여 다섯 차례의 강연을 개최했다. 이들은 한결같이 복음이 아시아의 토양에서 잘 자랄 수 있기를 바라는 동시에 아시아 토양에는 이웃 종교와 여러 문화가 편재해 있으므로 교회가 서로 힘을 모아 선교할 수밖에 없다는 당위성을 강조하였다. 아시아교회는 교회만의 게토(ghetto)를 벗어나 아시아의 혁명적 변혁과 변화에 그리스도와 함께 새로운 세속적 거룩성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각오를 다졌다.
이렇게 EACC는 1957년 프라팟 준비대회를 시작으로 1959년 쿠알라룸푸르에서의 창립총회를 거쳐 1964년과 1968년에 열린 방콕총회 이후 1973년 싱가포르총회 때까지 발전을 거듭해왔다. 그러다가 싱가포르총회에서 EACC를 CCA(Christian Conference of Asia)로 이름과 체제를 바꾸었다. 1957년부터 1968년까지는 스리랑카의 나일스(D. T. Niles) 목사가 총무를 역임하였고, 1968년에 선임된 쵸탄 박사는 1973년 EACC가 CCA로 바뀔 때까지 총무로 재직하였다. 1973년까지는 의장이 한 명이었으나 집단지도체제를 도입해 네 명의 의장단을 두기로 헌장을 개정하였다. 사무국도 한 명의 총무와 두 명의 부총무를 두기로 하였다. 말레이시아의 감리교 주교인 얍(Yap Kim Hao)이 총무로 선출되어 1977년 페낭총회를 거쳐 1985년 서울총회 때까지 재임하게 된다. 한국의 강원용 목사는 1968년 방콕총회에서 부의장으로 피선된 후 1973년 싱가포르총회까지 활약하다가 새 헌장에 따라 CCA의 의장단으로 선출되어 1977년 페낭총회까지 지도력을 행사하였다. 1981년 방갈로총회는 한국의 강문규 박사를 임원(재정이사)으로 선출하였고, 1985년 서울총회에서는 박상증 목사가 총무로 피선되었다. 1990년 마닐라총회는 파키스탄교회의 주교 사무엘(John Victor Samuel)이 총무로 피선되었고 한국의 장윤재 교수가 청년대표로 의장단에 선출되었다. 1995년 콜롬보총회는 총무 선출을 총회가 아니라 임원과 회원국에서 선정한 한 사람씩으로 구성된 중앙위원회에서 뽑기로 헌장을 개정하였다. 총무 선거로 총회가 혼탁해지는 것을 막자는 의도였다. 새 중앙위원회는 필리핀의 카리니오(Feliciano V. Carino) 박사를 총무로 선임하였다. 2000년 토마혼총회에서 선출된 중앙위원들은 필자를 총무로 뽑았다. 새 천년을 맞이한 CCA는 에큐메니컬 운동의 활성화에 총력을 기울이면서 2005년 치앙마이총회 시작 직전에 퇴임하는 중앙위원들이 태국 출신 키단(Prawate Khid-arn) 박사를 총무로 선출하였다. 2010년 쿠알라룸푸르 총회를 마치고 구성된 중앙위원회는 인도네시아 출신 레방(Henriette T. Hutabarat Lebang) 목사를 총무로 뽑았고 2015년 자카르타총회는 새 중앙위원들이 인도의 추나카라(Mathews George Chunakara) 박사를 총무로 선임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CCA는 아시아 지역에서 기독교가 직면한 여러 가지 이슈에 관해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즉 전통 이념과 종교 간의 갈등 문제, 종교의 정치도구화 문제, 소외와 차별 문제, 복음과 문화 문제, 교회와 사회 문제, 교회교육과 인간화 문제, 아시아신학과 구원 문제, 지도력 배양과 연대와 온갖 속박으로부터의 해방 문제, 정의와 평화 문제, 반핵과 생명 문제, 기후변화와 환경 문제 등이 그것들이다. CCA는 아시아교회가 해방을 선포하는 교회, 정의와 평화를 이룩하는 교회, 화해와 차유를 이루어가는 교회, 사랑과 평등을 솔선수범하는 교회, 그리고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여러 부서를 중심으로 교회의 선교와 시대적 사명을 다하고자 힘쓰고 있다.

한국교회와 아시아 에큐메니컬 운동 이해
CCA 창립멤버인 한국교회는 영적, 인적, 물적인 측면에서 한몫을 하면서 나름의 공헌을 해오고 있다. 1957년 EACC가 창립한 때부터 1973년 CCA로 바뀔 때까지 한국교회의 참여는 괄목할 만한 편이 못 된다. 이승만정권과 박정희정권은 교회의 사회적 책임에 별반 주목하지 않았다. 하지만 박정희정권이 3선 개헌을 주도하면서 진보적인 교회 지도자들과 에큐메니컬 기구에 몸담고 일하던 실무자들이 각 분야에서 거세게 저항하고 나섰다. 도시농촌선교 분야, 도시빈민선교 분야, 학원선교 분야, 젊은 목회자 그룹 등이 연대하면서 민주화와 인권운동에 총력을 기울이게 되었다. 그 결과 한국교회는 진보와 보수로 나뉘게 되고, 체제 유지를 옹호하고 찬양하는 다수의 보수측 교계지도자들이 있는가 하면 독재체제에 몸으로 저항하며 민주화와 인권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진보세력으로 갈리게 된다. 한국교회의 진보적 에큐메니컬 운동은 이렇게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점을 높이 평가받아야 마땅하고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고 본다.
한국의 민중신학을 전 세계로 확산시킨 것도 CCA 신학부서장 나일스(D. Preman Niles)의 전적인 영향력 덕분이다. 그는 1979년 아카데미하우스에서 ‘민중신학협의회’를 개최하고 그 결과물을 묶어 『민중신학』(Minjung Theology, 1981)이란 제호로 책을 출간하였다. 이 책은 민중신학의 개괄적인 이해를 돕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최초의 영문판 민중신학 책을 보급한 것인데 김용복 박사가 여러 측면에서 큰 역할을 하였다. 또한 한국 민중신학 1세대에 속하는 세 사람의 책을 낸 것도 민중신학을 영어권에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서광선 박사의 저서 The Korean Minjung in Christ(1991), 김용복 박사의 Messiah and Minjung(1992), 그리고 안병무 박사의 Jesus of Galilee(2004)가 그것이다. 그리고 2세대인 임태수 박사의 Minjung Theology towards a Second Reformation(2006)은 한국 민중신학의 깊이와 핵심을 널리 알리는 데 많은 기여를 하였다. 그 밖에 김흡영 박사의 저서 Christ & the Tao(2003)는 한국신학이 다루는 영역과 범위를 넓게 이해하는 데 큰 보탬이 되었다. 필자의 God Who Matters(2005)도 CCA 치앙마이총회 때 배포함으로써 널리 보급되었다. 타이난신학대학교의 총장이던 교회음악가 로(Ito Loh) 박사가 보완하여 편찬한 증보판 CCA 찬송가 Sound the Bamboo(1990, 2000)가 2000년 CCA 토마혼총회 참석자 전원에게 배포하였다. 이 찬송가의 출판비는 당시 예장총회 총회장이며 도림교회 담임목사였던 유의웅 목사께서 전담해 주었다.

한반도 평화통일운동을 주도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에큐메니컬 운동의 쾌거이다. 1984년 일본의 도잔소에서 개최된 “동북아시아의 정의와 평화”(Peace and Justice in North East Asia)협의회는 NCCK와 CCA, 그리고 WCC 삼자가 만들어낸 성과이다. 물론 WCC가 주도적으로 이끌었지만 CCA와 NCCK의 협력이 결정적이었다. 강문규 당시 한국YMCA전국연맹 사무총장은 WCC 국제위원회 위원으로, 박상증 목사는 CCA 부총무로, 그리고 오재식 선생이 NCCK 선교훈련원장과 통일위원회원장으로 모두 자신의 역할을 십분 발휘하였다. 당시에는 한반도의 통일을 직접적으로 거론하기 어려운 시기였기 때문에 “동북아시아의 정의와 평화”라는 주제를 내걸고 한반도의 평화통일에 관해서 논의하였다.

그 결과 도잔소협의회는 선언문을 채택하였는데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1)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은 화해의 복음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2) 평화 통일은 남측교회의 선교과제가 아니라 남과 북 교회 공동의 과제임을 밝힌다. (3) 통일은 남과 북은 물론 세계교회의 공동 책임이며, 지금까지 북조선을 고립시키는 정책에서 벗어나 세계교회들이 북조선의 교회를 방문함으로써 한반도의 통일을 함께 지원할 것을 다짐한다.
또한 도잔소협의회는 남과 북의 교회는 물론 세계교회가 함께 다음과 같은 일들을 주도적으로 추진할 것을 결의하였다. (1) 이산가족에 관하여 인도적인 관심을 갖는 일, (2) 통일에 관한 토론이 대중적으로 번져나갈 수 있도록 적극 참여하는 일, (3) 상호 적(敵)이라는 이미지를 극복하는 일, (4) 청년과 여성들이 정의와 평화를 위한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권장하는 일, (5) 군비 경쟁을 막는 일 등이다.
도잔소협의회는 조선그리스도교련맹(Korea Christian Federation, 이하 KCF)과의 협력 문제는 WCC 국제위원회를 통해서 적절한 조정(coordination)을 거치기로 약속하였는데, 이를 통상 ‘도잔소 프로세스’(Tozanso Process)라고 부른다. 도잔소협의회의 성과는 당장 나타났다. 1986년 글리온에서 남과 북의 교회 대표와 세계 에큐메니컬 지도자들과의 만남이 성사된 것이다. 분단 이후 처음으로 NCCK 김소영 총무와 KCF의 고기준 서기장이 각각 대표단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성례전을 공동으로 집전하며 친교를 나눈 후 주기적인 회동을 가지기로 하였다. 글리온회의는 1988년과 1990년까지 이어졌고 남과 북을 오가면서 회집하기로 하였으나 이후 산발적인 모임이 이어졌을 뿐이다.

이렇게 뚫린 통일논의 물꼬는 그 내용을 되새겨보기 위해서 2004년 10월, WCC와 CCA가 NCCK의 협력을 받아 ‘도잔소20주년협의회’를 같은 장소 같은 시기에 개최하였다. 우리의 주변 상황이 크게 변했지만 한반도의 평화 통일 과제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는 현실을 확인하고 대안을 찾고자 회동한 것이다. 그래서 도잔소20주년협의회 주제를 ‘한반도-동북아시아의 발화점’(Korean Peninsula-A Flashpoint in North East Asia)으로 정하고 세계 에큐메니컬 지도자 60여 명이 모였다. 이 모임에는 KCF 중앙위원장 강영섭 목사가 대표단을 이끌고 참석함으로써 20년의 변화를 실감하였다. 도잔소20주년협의회는 결의문을 채택하였는데 그 내용은 크게 셋으로 나누어진다.

(1) 정부에게: 2000년 6월 15일 개최된 남북정상회담의 정신에 따라 민간교류와 협력을 확대하고 상호 대결을 해소하는 일에 정부가 앞장서 줄 것, 1992년 남북공동성명에서 밝혔듯이 한반도의 비핵화를 이룩하는 일에 적극 나서줄 것, 6자회담이 북조선을 압박함으로써 한반도에 다른 변수가 생기지 않도록 유의할 것, 미국은 북조선과 국교정상화를 체결함으로써 동아시아에서의 긴장을 완화해야 하며, 일본은 2002년 9월 17일 북조선과 체결한 평양선언을 충실히 이행하고,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는 인도적인 차원에서 북조선을 도와야 한다는 것을 정부에 건의한다.
(2) 교회와 파트너에게: 한반도의 평화 통일을 위해 여성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인식, 2003년 여름, 남과 북의 여성대표들이 평화 통일을 위한 화해의 모임을 금강산에서 가진 의미, 2001년 9월 토론토에서 모인 국제기독교여성 모임은 여성의 국제연대를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으므로 꾸준히 이를 추진하고 지원키로 하고, 교회는 기독청년학생들이 적극적으로 펼쳐온 통일운동에 참여하도록 지원해야 하며, 언론의 악의적이고 부정적인 역할이 평화 통일을 가로막고 있다는 인식을 하였고, 정보 통신의 새로운 기술을 동원해서 네트워킹을 해나가도록 교회와 파트너에게 건의한다.

(3) 에큐메니컬 기구에게: WCC와 CCA는 NCCK와 KCF는 물론 일본NCC와 그 밖의 세계 에큐메니컬 기구들과 실무단(working group)을 만들어서 교회와 에큐메니컬 기구 및 관심 있는 개인들이 한반도의 평화 통일과 화해를 이루는 일에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고, 분단의 장벽을 허무는 일에 세계 에큐메니컬 운동의 힘을 결집하는 동시에 희년의 정신에 따라 분단으로 말미암아 아픔을 겪는 이산가족의 만남이 주선됨으로써 하나님의 축복이 한반도에 가득하기를 바라는 소망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에큐메니컬 기구에 건의한다.(에큐메니컬 기구의 실무단은 2005년 여름에 마닐라에서 도잔소20주년협의회의 여러 가지 결정사항을 집행해가기 위한 실무단회의를 가졌다.)
WCC는 2009년 홍콩에서 ‘도잔소25주년협의회’를 개최하였고 2014년에는 ‘도잔소30주년협의회’를 보세이 에큐메니컬 인스티튜트에서 개최하였다. 보세이협의회에는 KCF의 중앙위원회 위원장인 강명철 목사가 취임 이후 세계 에큐메니컬 무대에 처음으로 등장하여 훌륭한 지도력과 특유의 친화력으로 좋은 인상을 남겼다. 또한 지난 11월 중순 홍콩에서 WCC가 주최한 “한반도의 평화조약을 위한 국제 에큐메니컬협의회”(International Ecumenical Conference on a Peace Treaty for the Korean Peninsula)가 개최되었다. 이 협의회에는 NCCK 총무 김영주 목사를 비롯한 한국 대표단과 KCF 중앙위원회 위원장 강명철 목사를 비롯한 대표단 및 세계 에큐메니컬 기구 대표 60여 명이 참석하였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그리고 화해와 협력을 위한 에큐메니컬 운동의 노력은 1984년 도잔소협의회 이후 꾸준히 이어져 오고 있다. 

한국교회의 도움으로 1985년에는 제8차 CCA총회를 서울에서 개최하였고, 또한 CCA아시아선교대회도 총회에 앞서 열렸다. 1990년에도 WCC 생명·평화·창조질서 보전에 관한 세계대회와 2013년에 제10차 WCC총회를 부산에서 개최하였다. 1989년에는 세계개혁교회연맹(WCRC) 제22차 총회가 한국에서 열렸고, 2016년에는 세계선교협의회(Council for World Mission)총회도 제주도에서 개최되었다.
한국교회 에큐메니컬 지도자들은 위에 언급한 여러 국제기구에서 중책을 맡아 활약하였다. CCA의 임원으로는 강원용 목사와 장윤재 교수가 의장단으로, 강문규 선생이 재정이사로 지도력을 발휘하였다. 실무자로는 박상증 목사와 필자가 총무로, 그리고 오재식 선생, 권호경 목사, 이홍정 목사, 박성국 목사가 부서의 책임자로 활약하였고 현재 문정은 목사가 CCA 본부에서 한국교회의 지도력을 발휘하고 있다. 에큐메니컬 운동은 집단지성의 리더십이 돋보이며 발전해왔다. 이 역사적 흐름에 한국교회는 당당하게 지도력을 공급하였고 앞으로도 꾸준히 명맥을 이어가리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교세나 재력이 우리보다 미약한 일본교회와 비교할 때 한국교회가 에큐메니컬 운동에 지원하는 재정적 기여는 훨씬 뒤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다.

   
               * CCA역대 총무(한국인은 4대 박상증, 7개 안재웅)

예장뉴스 보도부 ds2sg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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