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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승룡의 영화이야기

기사승인 2024.05.25  21:5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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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챨리 채플린      
 
지승룡(연세대, 장신대 '민들에 영토' 창립자, 문화평론가)

찰리 채플린 ‘거울은 나의 가장 친한 친구다 내가 울 때 웃지 않기 때문이다’ 라고 말했다. 월트 디즈니는 美FBI 요원이었다. 월트 디즈니가 생존했을 당시 그의 밀고로 FBI에 의해 공산주의자로 몰린 찰리 채플린, '카사브랑카'와 '소유와 무소유' 의 주인공 험프리보가트, 4대째 아카데미상을 받은 존 휴스턴감독, 캐서린 햅번 등 많은 배우들이 피해를 당했다. 

당시 할리우드에는 영화제작사라는 권력이 부를 독점하고 있었고 작가, 음악인, 다수의 스텝과 배우들은 저임금을 받고 생존했다. 인생을 던지고 영화로 들어 온 이들은 가스라이팅 희망고문을 받으며 버티고 있었기에 그것이 착취의 구조이고 인권사각지대라는 것을 덜 자각할 때 먼저 자각하고 인권운동에 앞장 선 인물이 험프리 보가트 같은 인물이다 

영화 제작사들은 인권운동이 커지면 자신들의 이익이 줄기에 이것을 막기 위해 FBI를 이용해 이들을 공산주의자로 몰고 가는 일에 앞장섰다. 찰리 채플린이 쓰고 감독한 <모던 타임즈> 자본주의 사회의 부조리와 기계화 이후 온 대공황 시대의 불편한 진실의 사회상을 코믹으로 표현했다, 영화의 배경이 된 1930년대는 세계 대공황의 시기였다. 

그런데 대공황 이전에는 기계화로 초호황을 누렸다. 기계화로 인간이 수단이 되고 과잉생산으로 모두 일자를 잃게 된다.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은 식량을 훔치며, 채용광고가 실리면 실직자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든다. 경제가 인류 역사상 최악의 경기 침체로 빠진 원인은 역설적으로 대량생산 때문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상황이 반전되어 이번에는 소비자의 구매력이 생산량을 미처 따라가지 못하게 되었다. 대량생산된 물건이 팔리지 않고 재고로 쌓이기 시작하자 기업이 생산량과 고용을 줄이면서 대공황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대량생산이 독이 되어 돌아온 셈이다. 

   
 

1936년 모더타임즈 영화 내용 

시계가 6시를 가르치며 지하철에서 노동자들이 나온다. 사장은 빠르게 생산하라고 계속 지시한다. 찰리는 직업병에 걸려 나사처럼 생긴 것은 뭐든지 조이려는 행동으로 정신병동으로 이송된다. 병원에서 나왔지만 찰리는 해고된다. 떠돈다. 어느 날 우연히 트럭에서 떨어진 빨간 깃발을 주려고 달리다가 시위군중 앞에 서게 되어 공산주의자로 몰려 체포된다. 찰리는 경찰서에서 탈옥수를 잡은 공으로 사면된다.

그래서 보안관 추천으로 일자리를 구하려고 하지만 쉽게 구하지 못하여 떠돌고 경찰서로 가고 싶어 한다.
빈민가에 플렛 고더드란 소녀가 아버지와 살고 있었다. 실직자라 가난하지만 행복한 부녀였다. 어느 날 아버지가 사고로 죽자 플렛은 빵을 훔치며 살다 경찰에 잡히고 찰리는 자신이 범죄자라고 말한다. 

이 일로 둘은 가까워진다. 찰리는 백화점 야간 경비원으로 취직했는데 도둑이 들었다. 잡고 보니 찰리와 같이 공장에서 일하던 사람이었고 둘을 함께 술을 마시고 잠들었다 담 날 이유로 다시 경찰서로 간다. 플렛은 간신히 카바레에 취직해 춤도 추며 인기를 누리고 돈을 벌고 찰리도 이곳에서 일하며 둘은 잘 살 것으로 예측했으나 과거 협의로 다시 경찰 유치장에 갇히고 새벽에 두 사람은 탈출한다. 자막에 나오는 두 사람의 대사가 특별하다. 

플렛: 살려고 노력해밨자 무슨 소용이죠?
찰리: 힘내요! 죽는단 말은 하지 말아요 우린 버틸거예요! 

타이틀백의 시계가 상징하듯, 시계에 지배되는 문명과 인간성 무시에 대한 도전과 분노를 표현한 것이다. 체제를 향한 채플린의 거침없는 풍자는 미국 주류 세력의 심기를 건드렸다. 결국 메카시즘 광풍과 함께 채플린은 1952년 미국에서 추방되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다른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채플린은 시련을 겪었다. 공산주의 영화라며 독일, 이탈리아에서는 상영이 금지됐고, 오스트리아에서는 우연히 주운 깃발을 들고 뛰다가 시위 주동자로 몰리는 장면이 검열에 걸렸다. 한국에서는 영화가 만들어진 지 50여년이 지나서야 개봉되었다. 

가끔 강연자들이 월트 디즈니의 성공사례를 들며 꿈을 가지라고 한다. 그러면서 꿈꾸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 꿈을 실현하는것 또한 가능하다. 내 모든 것이 꿈과 생쥐 한 마리로 시작했다는 것을 늘 기억하라는 월트 디즈니의 말을 인용한다.  설교나 강연에 예화가 필요한 것은 인정하지만 좋은 말 인용하지만 말고 그 말이 무슨 뜻인지 깊이 탐구한 이후 말해야 하지 않겠는가!  

   
 

월트 디즈니에 속았던 시대 

월트는 상상할 수 없는 저임금으로 하청을 준다. 홍보할 때 영화 제작자인 자신의 이름만을 내세웠다. 지금도 월트 디즈니가 만든 애니메이션으로만 알지 작품의 감독이나 애니메이터들을 아는 사람은 없다.
월트디즈니, 픽사, 드림웍스 등 애니메이션 제작사 입장에서는 언제 회사를 그만둘지 모르는 직원을 미는 것 것보단 회사가 한 걸로 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인데 이 안 좋은 흐름을 만든 게 월트 디즈니다. 

또한 월트 디즈니의 상징 미키 마우스를 비롯한 디즈니의 마스코트 캐릭터들을 만들어낸 사람은 월트 디즈니가 아니라 어브 아이웍스다. 나중에 아이웍스가 독립하자, 월트는 수단방법 안 가리고 훼방을 놓았다.
독단주의적 성향과 직원에 대한 부당한 대우로 인해 직원들이 스튜디오를 떠났던 것은 월트의 치명적 잘못인데 사람들이 그만두어도 다시 인재를 찾아오면 된다는 마인드였으며 신기하게 또 어디선가 인재를 데려와서 작품과 회사는 살리는 신기한 재주가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자신 맘대로 해도 일이 잘 풀려니 문제를 고칠 생각이 없었으며 이런 그의 성향은 죽을 때 까지 변하지 않았다. 미국 반공 선동가 메카시즘 광풍이 불었을 때 월트는 이에 적극 동조하며 파업을 하며 자신을 비판했던 사람들 마음에 안 드는 사람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아세웠다. 

공개된 정보에 의하면 월트 디즈니는 FBI 최고 실력자 에드거 후버아래서 25년간 공작원이었다. 그는 그의 라이벌도 공산주의로 몰아 제거시켰다. 바로 찰리 채플린이 대표적 희생자였다. 반미활동 조사위원회 조직을 동원해 척출하였다. 미키마우스의 활동은 채플린의 동작을 모방한 것이었다. 미국 영화 분위기에 환멸을 느낀 채플린은 스위스로 갔고 20년동안 미국에 오지 않다가 공로상 수상에 미국지인들이 와서 응원해달라고 해서 딱 한 번 미국을 방문한다. 

월트 디즈니는 사회정의에 관심이 많고 의식 있는 영화관계자들의 내분을 조장하고 밀고해서 배신하게 하는 못난 사람이었다. 그래서 밀고와 변절로 배신한 배우가 ‘애수’ ‘쿼바디스’ ‘’원탁의 기사‘ ’형제는 용감했다‘에 출연한 로버트 테일러다. 

찰리 채플린이 흑백 무성영화를 지향했던 것은 어두웠던 산업화시대에 대한 표현이며 저항하지 못하는 노동자의 목소리를 역으로 유성으로 담은 것이다. 찰리 채플린의 어록이 애잔하다 “나는 신과 평화롭게 지낸다 다만 인간과 갈등이 있을 뿐이다”

예장뉴스 보도부 ds2sg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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