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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근, 김치영목사 발표회

기사승인 2024.06.11  22: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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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교회사 포럼 열려 

한국교회 선교 140주년 인물연구(1970-80년대) 목회자 연구로 고영근목사와 김치영목사에 대한 연구 발표와 자료 전시회가 지난 6월 11일 총회 100주년 그레이스 홀과 로비에서 열렸다. 행사는 1부 경건회로 김선인목사(위원회 서기)의 인도로 이대원장로가 기도하고 성경 롬 8:37 본문으로 부총회장 김영걸목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2부는 김치영목사기념사업회 회장 손산문 목사의 인사와 행사 취지를 설명한 후 위원회 전문위원 최윤석 목사의 사회로 먼져 고성휘박사(고영근목민연구소 이사장)가 ‘하나님의 정의를 향한 목민 고영근목사의 사역(1970-80년대를 중심으로)를 발표했다.

   
 

고영근목사는 워낙 유명하기도 하지만 목민연구소를 통하여 많은 저작물과 홍보가 많이 되어 자세한 소개는 줄인다. 하지만 총회 차원에서의 연구는 처음으로 총회 역사, 선교유산회복위원회가 두분을 묶어 연구하고 알리게 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이후 '김치영목사, 그는 누구인가?' - 그의 목회와 신학에 대한 한국교회사적 조명- 이라는 제목으로 손산문목사가 발표했다. 김치영목사는 1925년 경북 의성에서 출생하여 계성중고등학교를 다니며 대구제일교회에서 성장한다. 이후 서울신대를 졸업하고1947 대구 비산동교회를 개척하여 목회한다. 1950년 대 영남신학대학 겸임 교수를 지내고 1950년 한국신학대학에서 장공 김재준 목사에게 논문을 지도받았다.

1961년 미국 그랜드레피즈 침례교 신학대학으로 유학을 다녀와서 1965년부터 ’ 한알의밀‘ 이라는 기독청년운동을 시작한다. 그리고 1969년 자신이 개척한 비산동교회 사임하고 동산병원 원목을 거쳐 ’한알의밀교회‘을 다시 개척한다. 1979년에서 대구 영신 분교로 설립된 부산장신의 학장으로 부임한다.

   
 

1995년 정년은퇴후 동산 성서학원 강사와 연구활동을 하던중 간암진단을 받고 2000년 별세한다. 김목사는 대구 인권위원회 의장도 지내고 사후 5,300권의 장서를 영남신학대학에 기증했다. 슬하에 김동선 동선 두 아들과 여식으로 운경을 두웠다.

동선목사는 총회에서 사역하다가 영국 에딘버러대학에서 신학박사가 되어 호남신학대학교 교수로 정년은퇴했으며 둘째 동건 목사도 영국 에딘버러대학에서 조직신학 박사 학위를 받고 영남신학대학에서 정년 은퇴했다. 특히 김동건교수는 직접 부친이 남긴 자료와 연구물, 기억들을 모아 책자를 내기도 했다.

   
 

서울에서 김치영목사를 기억하고 존경하는 분들 중 계성학교 후배인 하은규목사를 중심으로 그 정신을 잇는 교회를 세워 목회하다가 은퇴했다. 또 부산장신대 학장 시절 당시 장신대를 갓 졸업한 대구 출신의 박희영목사를 헬라어 강사로 부른다. 박희영목사도 년전에 수원에서 은퇴 한바 있는 옛 스승을 기억하여 하은규목사(은퇴후 양평 거주)와 박희영목사도 직접 참석하여 후배들을 격려했다.

   
 
   
   
 

예장뉴스 보도부 ds2sgt@daum.net

<저작권자 © 예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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