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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와 성조기

기사승인 2019.03.18  09: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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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태 목사 (대전신대 선교학 /신성교회 담임)

                            태극기와 성조기

김윤태 목사 (대전신대 선교학 /신성교회 담임)

   
 
2003년 1월 11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나란히 든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북한의 인공기를 불태우며 ‘나라와 민족을 위한 평화기도회’를 열었다. 말이 기도회지 정치적인 ‘친미반북집회’였다. 사람들은 이 집회를 극우파 개신교도들의 정치 데뷔 무대라고 부른다. 그로부터 기도회를 빙자한 수많은 시국집회가 개최되면서 기독교 근본주의자들과 극우 세력은 긴밀한 밀월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리고 지난 2019년 3월 1일, 삼일절이 일어난 지 백주년이 되는 날을 기념해서 한교연과 한기총은 “우리나라 대한민국 지키기 3.1 만세운동 구국기도회”를 개최했다. 기도회가 끝나자 곧바로 태극기 집회가 열렸다. 물론 한기총과 한교연은 태극기 집회와는 전혀 다른 집회라고 주장하지만, 그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다. 왜냐하면 한기총과 태극기 집회를 주도하는 애총협이 함께 삼일절 기도회를 개최하며 친미반공집회를 시작한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극우세력들과 어울리며 자꾸 정치판에 기웃거리고 있는 걸까? 답은 간단하다. 기독교 근본주의자들과 극우 세력들은 서로 공통분모가 많기 때문이다. 정치-종교 극우연대는 내용면에서는 친미 반공, 방법 면에서는 증오와 혐오라는 공통분모가 있다. 물론 이것은 비단 우리나라만 그런 것은 아니다. 외국에서도 종교 근본주의자들과 극우 정치인들은 쉽게 연대가 이루어진다.

2001년 9월 11일 미국의 세계무역센터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테러로 무너졌다. 그들은 이것이 알라의 뜻이라고 말했다. 2011년 7월22일 노르웨이에서는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라는 루터교인이 총기난사를 일으켜 76명을 살해하는 끔찍한 테러가 일어났다. 그는 기독교 근본주의자였을 뿐 아니라 극우적인 정치성향을 가진 테러리스트였다. 정부의 이슬람 포용정책에 반감을 가지며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기독교 유럽을 구출해야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이름으로 테러를 자행한 것이다.

극우주의자들은 나와 너를 나누고, 아군과 적군을 나눈 뒤 너와 적군에 대한 증오를 자양분으로 삼는다. 이것은 종교 근본주의자들도 마찬가지다. 금과옥조처럼 지키는 몇 가지 근본 원리들만이 선이요, 그 외에는 악이다. 악은 혐오의 대상이요 제거의 대상이다. 그 악을 징벌하기 위해 폭력과 혐오는 어쩔 수 없다고 믿는다. 오늘날 한국 사회내의 극우주의자들과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연대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들 모두는 철저한 선악 이분법을 통해 끊임없이 악에 대한 증오와 폭력을 정당화시켜왔다.

예를 들어, 북한은 악이요, 미국은 선이다. 한국은 선에 속해야 하므로 미국편에 들어야 한다. 악은 제거의 대상이므로 평화통일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군복을 입은 기독교인들이 등장하여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인공기를 불태우는 것이다. 극우주의자들과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공공의 적에 대한 일종의 증오연대인 것이다.

만약 이 세상을 선과 악, 둘로 나누어 보기 시작하면 악은 제거의 대상이면서도 동시에 선이 존재하기 위해 계속 필요할 수 밖에 없는 필요악의 모순에 빠지게 된다. 내가 존재하기 위해 너가 필요하고, 선이 존재하기 위해 악이 필요한 것이다. 실제로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과거 공산주의자들을 혐오했다가 공산주의가 패망하고 나니 종북주의자들을 혐오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이제는 이슬람과 동성연애자들까지 끌어들여 증오심을 불태우고 있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모두가 다 극우세력과 종교근본주의자들의 증오와 폭력을 정당화 시켜주는 고마운 악의 축들인 셈이다.

사실 선은 악을 제거해야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존재론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악은 선의 부재일 뿐이다. 우리의 사명은 결핍된 선의 확장이지 악의 제거가 아니다. 그렇게 보았을 때 예수의 이름으로 악을 제거하는 것은 결코 기독교적인 선교가 될 수 없다. “이 세상(οικουμενε)”은 증오하고 제거해야 할 악의 축이 아니라 “장차 다가올 세상(οικουμενε μελλουσα)”을 위해 자비를 베풀어야 할 선교의 장이기 때문이다.

이런 선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면 북한도, 동성연애자도, 무슬림도, 증오나 혐오가 아니라 사랑과 긍휼, 선교의 대상으로 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지금 우리에겐 증오 연대가 아니라 사랑의 연대가 필요하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마 5:43-45).

김윤태 목사 oikos78@msn.com

<저작권자 © 예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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