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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남 목사 회고록 나와

기사승인 2019.10.04  22: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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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남 목사 회고록 “인권 온몸으로” 출간

   
 
기독교 민주화운동 인물사 씨리즈 5권으로 이명남 목사(당진교회 원로) 의 회고록 출판기념회가 지난 10월4일 기독교회관에서 있었다. 임광빈 목사(의주로교회)의 사회로 김혜숙 목사(여교역자연합회 사무총장)의 기도와 김영태 목사(PCK 전 총회장)의 설교가 있었다.

이어 김영주 목사(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원장)의 서평과 충남 도지사 양승조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정진우 부이사장, 안재웅 이사장(한국 Y 연맹 유지재단, 이홍정 총무(NCCK)의 축사와 특별순서로 윤석양(군양심선언)선생이 “한국 교회 인권운동과 나“라는 제목으로 인사했다.

한국기독교민주화운동 이사장 권호경 목사(회고록 출판 위원장)의 발간과 헌정에 이어 이명남 목사의 감사의 인사가 있었다. 축하순서로는 태너 김태선 선생의 특송과 사회자의 광고에 이어 손달익 목사(PCK 전 총회장의 축도로 모든 순서를 맞쳤다.

   
 
이명남 목사는 현재 충남 문화재단 이사장(2019.7월)이며 이전에는 당진문화재단 이사장을 지냈다. 장신대를 늦깍이로 졸업하고 평범한 목회자에서 인권운동과 목회자, 민주화, 통일운동에 이르기 까지 당진교회를 시무하면서 충청권과 서울을 아우르는 대표적인 민주인사다.
   
 
충남노회 노회장과 총회 임원을 지내고 정평목협 의장, NCCK 인권위원장과 인권쎈타 이사장을 지냈다. 이 목사님은 작년에 암수술로 인하여 건강이 많이 쇠약해진 가운데 이번에 후진들과 동지들로부터 이 회고록을 헌정받으신 것이다.

마침 80회 생신을 맞아하셔서 후배들로부터 축하를 받으셨다. 이 행사에는 기독교원로들인 김용복 박사, 백도웅 목사, 김재열 신부, 김덕신 목사, 백남운 목사, 김병균 목사, 정지강 목사, 최태순 목사 충남지역의 후배들과 자녀들이 참석했다. 대표로 이홍정 총무의 축사의 글을 소개한다.

   
   * 좌로 부터 김성복 목사, 임광빈 목사, 큰 자부, 이명남 목사, 막내 여식, 2남, 장남 이충영 목사

                        이명남 목사님 회고록 출판기념회 축사
이홍정 목사(NCCK 총무)

역사가 지닌 힘과 정신의 발현은 오늘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우리에게 남겨진 기억의 유산을 비판적으로 해석하고 성찰하는 과정을 포함합니다. 회고록은 개인의 경험 등을 통해 쓴 역사나 기록으로, 제한적이지만 개인사와 사회사의 지평융합을 통해 이루어낸 삶에 대한 자기성찰적 해석학적 자서전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명남목사님의 회고록을 발간하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인 목사님의 생애와 그를 중심으로 형성된 생명의 망을, 우리들의 역사와 신앙의 유산으로 다시 소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를 통해, 오늘 우리의 삶을 조명하고 내일을 향해 나가는 공동체적 순례의 길에 이정표로 삼고자 합니다.

목사님께서는 대전·충남지역에 뿌리내린 지역교회의 목회자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신 채, 복음의 진리의 빛에서 분단체제 하 군사독재정권 및 보수수구정권에 대해 온 몸으로 저항하시며, 한국사회의 민주화와 인권과 평화통일을 위해 헌신하셨습니다. 특별히 이 땅에 정의와 평화를 위해 일하는 신앙의 동지들과 함께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목정평') 사역에 깊은 애정을 가지시고, 교회 다음으로 가장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드려 섬기셨습니다. 목사님께서는 민주화운동과 인권운동 및 여타의 사회운동을 목회와 병행하며 조화를 이루어 나가기가 어려운 한국교회의 상황 속에서, 복음과 상황, 그 사이의 상호비판적 연관성을 깊이 성찰하시면서 행동하는 신앙인으로 살아 오셨습니다.

저는 목사님께서 회고하신 자신의 성격에 대한 어느 한 초상이 마음 깊이 남아 있습니다. “나는 지방에서 낳고 자라서 비록 내 세울 큰 학력이나 경력은 없지만, 예수 믿고 목사가 된 이래 성실하고 정감 있는 사람으로 살았고, 항상 진실한 마음과 정신으로 불의에 도전하며 살아왔다. 그리고 한 번 마음에 정한 일은 반드시 이루고, 특히 공적 유익을 위하여 필요한 일이라면, 시간과 물질을 내가며 끝장을 보는 성격이다. 또한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오랫동안 민주화 투쟁의 현장을 외면하지 않고 찾아가고 격려하는 역할을 그만 둘 수 없었던 것은 나의 이런 성격에서 기인한다.” 목사님의 이 같은 자화상은 목사님의 일생이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위해 주신 선물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줍니다.

그렇습니다. 성격이 운명입니다. 목사님의 인생은 그 성품으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의 흔적을 지니셨습니다. 한반도라는 역사의 성문 밖에서 목사님께서 지니신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의 흔적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니셨던 비천한 자리로 낮아질 수 있는 능력, 자기가 상처를 입을 수 있는 위험을 무릎 쓰는 능력, 사랑으로 자기를 내어주는 능력의 상징입니다. 저는 목사님께서 지니신 이 같은 능력이 한국교회와 한국사회의 존재를 새로운 차원으로 이끄는 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런 능력이 목사님께서 걸으신 길 위에 새겨진 수난의 흔적들을 바람직한 것으로 만들거나, 덜 고통스러운 것으로 만들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목사님의 수난의 흔적을 통해, 인간은 무언가 보다 중요한 것 때문에 기꺼이 상처를 입을 위험을 무릎 쓸 수 있어야 한다는 교훈을 받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같이 수난 당하는 사랑의 능력이 새롭게 신뢰를 일으키고, 용서와 치유와 화해의 새로운 시작을 가능하게 하며, 끝내는 사랑의 친교를 회복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목사님께서는 분단체제 아래서 군사독재정권을 대항하여 민주화 투쟁을 한 것이나 인권운동을 한 것이, 어느 개인에 대한 감정이 있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이 시대를 향하신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것이라고 고백하셨습니다. 목사님께서는 목회가 삶이며 맡겨진 양을 사랑하는 것이지, 기술이나 재주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는 소신을 지니셨습니다. 그리고 민주화운동과 목회가 별개가 아니라고 생각하셨습니다. 목사님의 사역 안에서는, 교회의 목회와 시대의 목회가 다른 둘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의 목회였습니다.

“군사독재에 대한 비판과 정의감으로 뭉친 우리는, 두려움보다 애국 애족의 마음으로, 마치 독립군 출정과 같은 심정으로, 집회나 행사에 임하곤 하였다. 그러면서도 목회적으로 소홀함 없이 병행했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고 술회하신 목사님께서는, 대중교통을 이용하시며, 원근을 따지지 않으시고 있어야 할 자리에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으신 채, 언제나 성실하게 앞장 서서 우뚝 서 계셨던 목사님이셨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오늘 목사님의 회고록 『인권, 온 몸으로』가, 목사님의 생의 마지막이 예견된 상황에서 출판되면서, 우리 모두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회고록은 유언과도 같은 회고록이요, 오늘 이 출판기념회는 미국 작가 미치 앨봄이 자신의 스승 모리 슈워츠 교수의 실화를 책으로 옮긴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에 나오는, 생의 마지막 만남으로의 초대를 생각나게 하는 시공입니다. 작가 미치 앨봄은 당시 78세로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 즉 루게릭병을 앓고 있던 모리 슈워츠 교수를 매주 화요일마다 14번을 만났고, 스승에게서 들은 인생의 경험, 회상, 그리고 현재의 모습을 그려냈습니다. 죽음 앞에 서있는 한 인간이 보여주는 생에 대한 열망은 간절하고 쓰라린 것이지만, 바로 그것을 통해 읽는 이는 오히려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하게 됩니다. 소소한 기쁨을 통해 자기 자신을 얻어가는 과정이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신뢰를 바탕으로 한 인간관계가, 서로의 존재가치를 드높여 각자의 인생을 얼마나 아름답게 상승시키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외투 속에 들어있는 손수건처럼,” “왼손 옆의 오른손처럼,” “직선 옆의 곡선처럼,” 죽음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아주 가까이 있습니다. 살아가는 것이 곧 죽어가는 것과 다름이 없기에, 죽음을 받아들이는 마음을 언제나 가슴에 가깝게 끼고 살아가게 합니다. 오늘 우리는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의 연장선상에서 일어날 법한 시공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지금 언제든지 불시에 죽음으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야 하는 운명을 지닌 우리 인간에게, 나직나직하게 알아듣기 쉽게 죽음을 껴안는 방법을 알려 주고 계십니다. 죽음까지 인생의 장으로 깊숙이 불러들여, 지상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죽음의 순간까지도 누군가를 용서하고 배려하고 활발하게 감정을 나누시면서, 작별을 고하는 이 시간을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으로 만들고 계십니다.

오늘 이명남 목사님의 회고록을 세상에 내어 놓으며, 이 세상과 교회를 향해 하나님의 선물이 되셨던 목사님의 삶을 본받아, 우리도 서로를 향해, 그리고 이 세상과 교회를 향해 하나님의 선물이 되어갈 수 있기 바랍니다. 죽음을 생의 깊은 곳에 끌어 안고 넉넉히 미소 짓는 자기 비움의 에큐메니즘을 생활화하는, 진정한 주님의 제자들이 되어가시기 바랍니다.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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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기독교 역사 ”전사불망 후사지사” 출판

   
 
지난 10월 1일 중국기독교 역사에 대한 귀한 한권의 책이 출판되었다. ‘지난 일을 교훈 삼아’ 출판 감사예배 및 에큐메니칼 세미나가 한국교회 100주년 기념관 네오트로에서 열렸다. 이 행사는 한경균 목사(총회 기회국)의 사회로 한강희 목사(낙산교회)가 기도하고 채영남 목사(PCK 전 총회장) 설교했다. 이어 책 서평은 김종구 목사(동북아선교연구센터 소장)와 오동일 교수(장신대)가 했다.
   
 
이어 이홍정 목사(NCCK 총무)의 제언과 정덕주 대표(한들출판사 대표)가 출판경위 보고와 총회 사무총장 변창배 목사의 격려사가 있었다. 그리고 역자중의 한분인 윤신영 목사(지구촌의료선교회 총무)의 인사와 임규일 목사의 마침기도(식사)로 행사를 마쳤다.

                                        김종구 목사의 서평

김종구 목사(동북아선교연구센터 소장)

1. 이런 엄청난 작업을 완수한 윤신영 목사님과 예장통합 에큐메니칼 운동그룹에게 다시 한번 축하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2. <전사불망 후사지사> 이 책은 제국주의 세력이 중국을 침략하기 위하여 기독교를 이용했다는 관점에 관한 역사적인 증거모음집입니다. 1949년 신중국(중화인민공화국)이 출범하고, 중국교회가 삼자애국운동을 시작하면서 이전 시대 제국주의 세력과 결탁했던 기독교의 여러 가지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이용가능한 대부분의 자료들은 당시 중국에서 활동했던 해외선교사들과 서구 각국의 외교관들의 증언을 담은 문서들이었습니다. 이러한 문서들을 중국기독교의 원로 지도력들이 모아내고 중국의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상황에 비추어 설명하며 분석해낸 것이 바로 <전사불망 후사지사>입니다. 이 작업의 목적은 아주 분명하게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서) 제국주의가 기독교를 이용해 중국을 침략했음을 증명하고자”(뤄관쭝의 서문, 30쪽) 하는 것입니다.
이 책은 이 증명을 네 가지의 요소들을 중심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선교사들과 그들의 정부관리들의 나눈 대화나 편지, 연설 등입니다. 둘째는 해외교회 지도자들의 증언입니다. 셋째는 5.4 운동때 등장한 중국인 운동가들이 제기한 해외선교사활동에 대한 폭로입니다. 마지막으로는 기독교복음에 위배되는 제국주의적 선교활동에 대해 비판적이던 중국교회 지도자들의 증언입니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범위는 중국 근대역사의 100년입니다. 태평천국의 난과 아편전쟁 시기로부터 5.4 신문화운동과 반기독교운동 시기, 그리고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과정과 삼자애국운동의 출범시기 까지입니다. 이 모든 시기를 통하여 중국에서는 서구교회 선교사들의 활동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졌으며, 선교사들은 다양한 형태로 자국 정부의 중국침략이라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봉사하였으며, 이러한 사실들은 모든 필진들의 논문에서 구체적인 사례로 논증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록의 형태로 개혁개방이후 해외교회들이 중국교회에 대해서 발표한 일련의 자료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3. 주목할 만한 것은 이 자료집이 비단 해외선교사들과 서국 각국 정부관리들만이 아니라 중국인들의 독특한 공헌도 포함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바로 1922년부터 1927년 까지 중국대륙을 거세게 휩쓸었던 반기독교운동입니다. 주로 대학생들과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진행된 이 운동은 비단 종교신앙의 자유문제만이 아니라 당시 중국사회가 관심하던 종교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비판적으로 제시하는데, 뤄관쭝 선생이 잘 정리해주고 있습니다. 종교의 비과학성, 기독교안에 포함되어 있는 미신적 요소의 문제, 과학의 원리나 사실에 위배되는 기독교교리나 성경의 문제, 기독교가 역사속에 저지른 십자군전쟁같은 과오의 문제 등등이 당시 반기독교운동에 의해 제기되고 공격되던 내용이었습니다.

기독교운동시기 제기된 또 한 부류의 문제는 중국에서 선교사들이 운영하던 소위 ‘기독교학교’에 대한 평가문제입니다. 이들 학교들은 문화교류의 측면에서 볼 것인가, 아니면 문화침략의 도구로 볼 것인가 라는 논쟁입니다. <전사불망 후사지사>에서 제시된 자료들은 대부분 중국에서 운영되는 대부분의 기독교학교들의 진정한 목적은 서구세력의 이익에 충성하는 중국의 미래지도자를 양성하는 것이며, 따라서 정치, 경제, 문화적인 측면에서 식민지배를 공고히 하는 일에 봉사하는 것이라는 시각으로 분석되었습니다.
반기독교운동이 제기한 다양한 문제들은 중국교회안에서 중국적인 요소를 강화하는 자극제가 되었고, 그 결과 중국교회안에서는 자립교회운동과 토착화운동이 활성화되는 결과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4. 이 책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은 바로 서구선교사들에 대한 평가입니다. 중국기독교삼자애국운동 50주년 기념식에서는 분명하게 선언하였습니다. “제국주의가 기독교를 이용하여 중국을 침략한 역사적 사실로 인해 50년대 삼자애국운동은 모든 외국선교사들을 ‘제국주의 분자’로 불렀는데 이는 그릇된 것이다.”(뤄관쭝 서문, 31쪽) 그리고 선교사에 대한 평가의 핵심은 선교사들의 활동과 정부침략정책과의 관계에 있으며, 중국인민에게 유익한 일을 한 선교사들을 잊어서는 안됨을 거듭 밝히고 있습니다. 복음전파를 위해서, YM/YWCA 등을 통한 보건위생과 사회봉사, 문화교류 등을 위해서, 항일운동을 지원함에 있어서 열정적이었던 선교사들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특별히 남경대학살사건이 자행될 때, 선교사들이 목숨을 걸고 백성을 구하거나 현장을 촬영하고 필름을 외부로 반출하여 실상을 알린 사건 등에 선교사들이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였음을 놓치지 말자는 것입니다.

저는 이 책이 기획되던 시기에 애덕기금회 해외간사 (1994-1998)로서 이 책의 편집자인 뤄관쭝 선생과 비교적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그때 중국교회는 삼자(三自)에서 삼호(三好)를 강조하는 운동으로 전환하던 시기였습니다. 삼자는 기본적으로 달성이 되었다고 보고, 이제는 교회를 보다 안정적으로 성장시켜가자는 흐름이었습니다. 물론 이 운동은 팅(K.H.Ting)주교가 주도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이 흐름을 다소 염려스레 바라보던 그룹이 있었는데, 그것이 상해를 중심으로 한 소위 ‘老三自’ 그룹이었고, 그 선두에 뤄관쭝, 차오셩줴 등이 있었습니다. 미래를 향한 전진을 다짐하는 와중에서 과거를 잊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원로지도자들의 열망이 서린 책이라고 저는 규정하고 싶습니다.

5. 마지막으로 번역과 관련한 문제를 좀 말씀드리겠습니다. 왜냐하면 이 책은 한국교회안에서 중국교회를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로 계속 활용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도 이전에 <정광훈문집>을 번역하면서 범했던 오류이기도 했기에 반성하는 마음으로 말씀드립니다.
1) 중국어의 한국어표기에 대한 관점을 일관되게 하고, 원칙을 알려주시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2) 중국사람들이 고집스럽게 외국인의 이름을 중국어로 표기하기 때문에 실제의 이름을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356쪽에 상해에서 활동하던 선교사들의 이름이 열거되는데, 그냥 한자음대로 그냥 써서 어떤 선교사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 외에도 외국회사 이름들도 원어로 표기해주면 오늘과 연결시키기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3) 기독교단체의 이름은 가급적 현재 우리들이 주로 사용하는 이름으로 번역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서든 하나의 단체를 그때그때마다 다르게 번역한 것은 아쉽기도 하고, 상황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주고 있습니다. 몇가지 예만 들겠습니다.
WCC는 본서에서 세계기독교연합회 등으로 번역했습니다만 우리가 늘 사용하듯 세계교회협의회로, Bible Society는 성경회, 성경총회, 성서공회 등 다양하게 번역되었습니다만 성서공회로, 협진회(協進會)는 NCC에 대한 중국어번역이 NCC로 번역해도 좋겠습니다.

중국내 교단과 관련해서는 우리식의 표현이 없으니 잘 번역하면 좋겠는데, 한가지 거슬리는 것은 워치만 니의 집회처(聚會處)를 그냥 한문그대로 취회처라고 번역했습니다. 영어로는 Little Flock으로 번역되는데 주를 달았으면 이해하기 쉬웠겠다 생각했습니다.

축하하는 자리에 아쉬운 말씀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그러나 이 아쉬움이 결코 이 위대한 사역을 가릴 수 없을 것입니다. 중국교회와의 에큐메니칼 협력에 종사했고 지금도 함께 일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오늘 중국교회 지난 200년의 역사속의 뼈아픈 경험을 고스란히 간직하여 후세에 전하려는 믿음의 선배들의 열정을 다시 배워야겠다 다짐했구요, 지금도 끊임없이 물질문명과 맘몬에 포로되어서 복음으로부터 벗어나고 있는 한국교회를 바라보면서 우리도 <전사불망 후사지사>의 결기를 세우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갖게 되어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중국교회의 역사와 지금의 신앙고백을 이해하는 정말 훌륭한 자료가 만들어졌으니 중국교회와 한국교회의 사이가 한층 더 가까워지리라 믿으며, 다시 한번 윤신영 목사님과 유동선 교수님, 그리고 여러 에큐메니칼 동역자 여러분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유재무 기자 ds2sg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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