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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교회 100주년 맞아

기사승인 2023.05.15  14: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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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경교회 이어 두번째로 세워진 동포교회 

   
 

일본에 가장 먼져 세워진 한국인 교회는 동경교회로 당시 일본에 유학중인 학생들을 중심으로 세워져 한국 YMCA를 조직하는 등 춘원 이광수등이 큰 활약을 한다. 초창기에는 본토에서 장감 목사을 초빙하여 초교파적 성격을 갖았고 이런 전통으로 현재도 재일대한기독교회는 교파색없이 본국의 기장 감리 장로교 파송 선교사들을 입허을 받는 다.  

재일대한 오사카교회는 1920년대에 접어들자 수많은 조선의 무산자들이 일자리를 찾아 후쿠오카.히로시마.오사카.고베 등지의 공업단지로 이주해 왔다. 그 가운데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던 여성 노동자들이 많이 포함돼 있었다. 힘든 타향살이 가운데 신앙은 그들이 버틸 수 있도록 지탱해주는 마지막 보루와도 같았다. 마침 고베신학교에서 신학 공부를 하고 있던 유학생 김우현과 박상동은 1921년5월 오사카 지역에 한인 동포들이 많이 이주해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에서도 목회사역을 펼치기로 결심했다.

마침 난파 방적의 여공으로 일하고 있던 김의생 자매와 신남수 자매 등이 신앙적으로 역사적인 만남을 가져 오사카교회가 탄생하게 되었다. 1922년에는 히가시나리구 오바세쵸의 김성하 주택의 2층을 전도소로 사용하여 선교활동을 개시했다. 김이곤목사가 순회하며 예배를 인도하는 가운데 1922년에 약 10여 명이 모여 본격적인 교회로 발돋움한다. 김이곤 목사와 박상동 신학생이 이끌고 있던 때의 예배 출석 인원은 평균 17~18명이었는데 그 당시 오사카의 조선인 총수는 약4만 명에 달했기 때문에 김우현 신학생은 고국의 ”기독신보”에 재일동포 전도의 필요성과 후원을 호소했다.

1924년에는 매주 평균20~30명이 모일 정도로 성장했고 1926년에는 성공회 풀학원 임대를 벗어나 모모타니쵸의 2층 건물로 옮겨 입당예배를 드렸다. 재일동포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보금자리로 발전해 나간 오사카교회는 1935년 제8회 공동의회에서 최초로 장로를 장립했고 신축 중이던교회 건물을 완공해 6월20일 입당예배를 드렸다. 하지만 1940년대에 접어들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조선교회는 대수난기를 맞게 된다. 그런 가운데서도 기시와다의 방적공장 여공들을 돌보는 교회등을 세워가는 등 관서지방 선교에 애쓴다. 

   
 

1941년 일본기독교단 가입을 전제로 하여 교회 명칭을 동부교회로부터 히가시나리교회로 강제 변경되었고 교회 내의 각 기관명도 변경되었으며 2월부터는 일체의 기록을 일본어로 사용하게 되었다. 토지와 건물도 일본기독교단에 강제 기부하게 조치되었고 2월2일 전인선 목사 위임식이 거행되고 5월13일 교회 창립자중 하나인 김의생 집사도 귀국하고 에드워드 영 선교사도 캐나다로 강제 추방되고 말았다. 전쟁이 끝나 조국이 해방될 때까지 조선교회가 일본 땅에서 겪어야 했던 고초는 이루 다 말할수없는 것이다.

1945년 8월15일 해방이되자 조선교회는 11월15일에 공동의회를 열어 교토교회에서 재일본조선기독교연합회 창립총회를 개최해 강제로 가입되었던 일본기독교단 탈퇴를 가결했다. 이후 오사카교히는 재일대한기독교회로 개칭된 교회 조직에 속하여 간사이 지역을 대표하는 동포교회로서 구심점 역활을 담당해왔다. 그후 1969년 성전신축실행위원회를 조직한 뒤 1970년에는 재일한국기독교회관과 협력하여 교회건축 토지를 구입했고 이듬해 입당예배와 재일한국기독교회관 개관식을 거행했다.

   
 

오사카교회 정연원목사

2년전 100년을 맞은 오사카교회는 코로나로 행사를 연기하여 이번에 100주년 기념주일을 지켰는 데 강사로는 정연원목사 모교회인 부산의 수안교회 이만규 목사를 초청했다. 오사카교회가 있는 관서지방은  오사카, 경도, 나라, 와카야마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은 일본에서도 가장 많은 한인이 살고 있고 본국으로부터 왕래가 많은 곳이다. 교회가 있는 자리는 生野(이쿠노)리는 곳으로 민단과 총련이 사이좋게 공존하고 있다.

   
 

현 담임 정연원 목사(장신대 74기)는 부산 출신으로 동경신학교에 유학을 온 후 동경중앙교회를 거쳐 오사카에 부임해 '재일대한기독교회' 교단 총회장도 지냈다. 양애경사모는 동경신대 동문이며 고 양형춘목사가 장인으로 재일대한기독교 총회장을 지내시고 미국서 목회하다 은퇴후 오사카서 여생을 보내시다 작년에 소천하셨다. 올해 초엔 처남 양상진목사가 세상을 떠났다. 그후 장모 장혜정 사모는 자신의 모교 장신대와 양목사의 모교 한신대에 각각 1억씩의 발전기금을 낸 바 있다. 

   
 

오사카교회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분은 고 김덕성 목사이다. 김목사는 1970년 11월 15일 부임하여 1999년 4월 14일에 소천하기까지 일본내 한인교회들의 지도자가 되었고 현재의 5층 건물의 오사카교회를 건축을 주도하였다. 일찌기 1950년 선교사로 파송받아 나고야와 후쿠오까교회를 거쳐서 마지막으로 오사카교회에서만 21년간 목회를 하였다. 두 아들들은 오사카교회의 장로(의사)가 되었고 두 딸들들도 재일대한기독교회의 권사와 장로로 재일대한기독교회의 중요한 여성지도자들이다.

오사카교회 김덕성 목사의 후임은 감리교의 노정일 목사로 나고야 교회 부목으로 있다가 부임하였다. 그러나 당회원들과의 긴장속에서 분열되여 가까운 곳에 신오사카교회를 개척하여 목회하는 데 교회는 교회는 교단에 소속되지 못하고 노 목사만 회원이 있는 형편이다. 정연원 목사 부임이후 교회는 회복하고 동포들과 새로운 이주자들에 대한 열린 목회를 하고 있다. 그러나 동포들 중심의 교회의 교인 감소는 전반적인 현상이다. 지역과 동포들의 노령화와 새로운 이주자들이 각지로 분산하기 때문이다.

   
 

KCC(한국기독교회관) 활동 

오사카교회 옆의 KCC회관은 관서지방 재일동포들의 역사적 고향이다. 고국의 유신독재 시대가 열리던 1973년 2월에는 3일간 지명관 교수를 초청해 특별 전도집회를 개최하기도 했으며 1979년에는 보육원까지 준공하여 오사카교회를 중심으로 사회선교와 교육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는 오사카 지역 동포들의 영혼의 안식처로 더욱 굳건한 자리를 다졌다. 현 관장 이근수목사는 전임자들의 전통대로 지역 NPO 시민활동센터로서 일제강점기에 이주해온 재일동포들의 불평등한 사회적 처우와 빈곤 문제 등을 조금이나마 해결하기 위해 1971년에 설립되었다.

특히 해방후 외국인으로 구별된 재일 코리아인들은 선거권 등 정치참여의 영역에서 권리와 인권이 약화되었고 그 결과 복지법 생활보호법 전염병 예방법 등에서도 철저히 소외되었다. 1965년 한일회담 이후 영주권취득허가와 의료보험 가입 학교 등록 등과 같은 일부의 권리가 조금씩 신장되긴 했지만 여전히 열악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전후 일본의 경제가 고도성장 함에 따라 재일 한국인들 가운데서도 재력을 확보한 이들이 다수 등장했고 기본 의식주 문제를 해결한 이후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한 노력에 관심을 기울이며 지원하기 시작했다.

회관을 완성하고 동포들의 법률인권상담과 차별철폐운동등 권리획득운동을 하는 데 앞장선 이는 이청일목사로 동경교회 고 오윤태목사가 장인이다. 부인 오수혜는 기독교교육학자이고 아들 이00목사도 한국으로 유학을 다녀온 재일대한기독교회 소속 목사다. 당시 간사로는 김성원장로(오사카교회)는 오사카 지역의 일본기독교단 성공회 카톨릭 침례교 등과의 에큐메니칼 연대 사업들을 전개하는 구심점 역활을 수행했다.

이곳은 한일교회사 연구자들이라면 꼭 한번 방문해볼 만한 곳이다. 이들의 수고로 KCC에는 평생 교회사 학자로 수집한 자료들이 정리되어 있다. 또한 연세대에 유학한뒤 한일기독교 관계를 위해 헌신하다 요절한 일본인 구라타 마사히코 교수가 소장하던 자료들도 인수하해 “구라타문고”로 정리되어 이곳에 보관되어 있다. 

   
 

오사카의 일본 교회
메이지 시대 니지마와 협력했던 디포레스트는 회중교회의 대표적인 선교사였다. 1874년 아메리칸 보드파송 선교사로 니지마 조(동지사 학원) 설립자와 함께 일본에 도착하여 오사카지역 전도활동을 착수했다. 그는 1887년에 훗날 일본은행 총재가 되는 도미타와 당시 미야기현 지사였던 마쓰다이라 마사나오등의 협력을 얻어 센다이의 도우카학교 안에 미야기영학교를 설립하는등 동북지역 전도에 평생 헌신하다 1911년 센다이에서 숨을 거두었다.

13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오사카 미나미 유흥가 속에 위치한 시마노우치교회의 현재 에배당은 1929년에 유명한 근대 건축가 나카무라 진의 설계로 지어졌다. 나카무라가 지은 교회 건물로서 유명한 곳은 도쿄의 유미쵸혼고교회, 규슈의후쿠오카케고교회, 오사카의 텐만교회등을 들수있다.

1945년3월 발생한 오사카 대공습 때 시내가 온통 불바다가 되는 과정에서 시마노우치교회도 3월14일에 화재피해를 겪었다. 하지만 1947년부터 50년까지 예배당 복구공사를 차근차근 진행하여 1950년7월에 현재의 모습으로 온전히 재건하는데 성공했다. 그러한 온성도의 땀과 노력의 결실로 예배당이 지켜져왔고 국가도 그가치를 인정해 2009년 문화청으로부터 등록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1920년대에 철근콘크리트로 교회를 짓는다는 것은 첨단 공법으로 지은 당시로선 가장 현대적인 건물을 의미했다. 지금 시각으로 보면 평범하고 단조로운 건물처럼 보일지라도 와카 대공습 때의 위기 속에서도 온성도가 헌신적으로 복구하여 부활시킨 소중한 신앙 유산이 아닐 수없다.

   
 

1903년6월7일에 가와베 테이기치 전도사에 의해 오사카시 미나미쿠 타마비즈바시의 한 주택을 빌려 시작한 오사카전도관이 일본 자유감리교단의 오사카 니혼바시기독교회의 모체이다. 텐노지 마츠무시에 지금도 위치한 오사카 기독교단기대학은 원래 이 교회의 전도사 양성학교로 1905년에 세워진 학교이다. 1923년9월에는 일본 자유감리교단 제1교회라는 이름으로 바뀌었고 1933년 4월 오사카 니혼바시교회(니뽄바시 구로몬시장 사거리)에 있다.

전후인 1952년5월에는 강제로 편입되었던 일본 기독교단을 탈퇴하여 다시 일본 자유감리교단에 가입하였지만 이후 여러 복잡한 교단 내부의 문제로 인해 2013년부터는 단립교회로 존속되고 있다. 현재의 예배당이 세워지기 전에 원래 1915년에 세워진 구회당이 있었지만 1923년에 소실되어 1925년에 다시세운다. 1920년대의 다이쇼 풍으로 지어진 콘크리트 예배당으로 2000년에 등록 유형문화재로 지정받았고 이듬해 대수선을 마쳐 오랜 역사와 함께 현역 예배당으로서의 사명도 잘 감당하고 있다.

   
 

 

유재무 편집인 ds2sg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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