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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수목사 영락교회 강단에

기사승인 2024.04.29  23:2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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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영수목사는 누구인가?

   
 

사무했던 교회의 강단이라고 전임자가 서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지만 반드시 그렇치 만은 않는 게 비애다. 지금도 전임자들이 자기가 시무한 교회에 얼씬 거리지도 못하는 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영락교회 임영수 목사도 그런 분중의 하나였는 데 이번에 영락강단에 섰다. 임영수 목사는 영락교회에서 지난 26년전 10년간 시무한 적이 있는 목사다. 이를 끝으로 제도교회서의 목회는 그만 두웠고 신학적으로나 신앙적으로 좀 자유롭게 교단 소속없는 예배 공동체를 운영해오고 있었다. 

경기도 양평에 "모두가 새로워지는 골짜기" 라는 이름의 “모새골공동체” 를 세워 지난 20년 동안 한국교회의 영적 갱신에 힘써오고 있다(이 이름은 손혜원 전 의원이 작명한 것으로 모세골 공동체 회원이다. 임영수 목사는 영락교회 사임 후 후배 이재철목사가 사역한 바 있는 스위스 베른으로 가서 목회와 상담학도 공부하고 견문을 넒히면서 피안을 떠난 수도원적 영성이 아닌 개방적이고 참여적인 신앙훈련을 하기 위한 이 공동체를 준비했다고 한다.  

따라서 모세골이라는 영성 공동체의 설립동기는 영락교회 담임으로 10년간의 목회 끝에 자의 사임을 한  후로 모새골 공동체가 지향하는 바는 이전의 목회를 반성과 반추로 한국교회의 갱신을 위한 깊은 고뇌로 보여진다. 당시 한국교회는 부흥과 성장은 교회마다 사경회식 부흥회를 지나 열린 예배식의 악기를 동원한 찬양과 경배가 주도할 때다.

   
 

이런 영성 예배가 개인의 회심과 열정에 도움이 되었고 열매도 없지 않았다. 예을 들면 온누리의 경배와 찬양은 삽시간에 전국 교회로 유행처럼 퍼져나갔고 호주의 힐송이나 미국의 죠엘 오스틴의 영향을 받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환경과 조건이 주어지려면 적어도 밴드형 악단과 새로운 악기의 도입으로 젊은이들이 주도해야 어울린다.

그러나 이는 전통적인 장로교회 예식에 어긋나고 미자립교회가 많고 지방엔 고령화로 모든 교회들이 받아드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또 형식으로도 일어서게 하거나 두손을 들게 하고 악보를 볼 수 없는 이들에게는 사실 둘러리 참관인에 불과한 예배다. 또 감성적으로 지성적인면이 약하고 전통적인 교회공동체와 일치하지 못한다.

사실 성경공부나 큐티와 달리 찬양은 딴딴라 문화로 싶은 내면의 고민없이 쉽게 찬양으로 일체감을 갖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생활이 예수믿고 기쁘고 찬양할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갈등하고 고민하고 결단해야 하는 일들이 많다. 그러나 찬양으로 순간적으로는 몰핀과 같은 잠시 치유는 되는 지 몰라도 그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는 깊이 있는 자아의 성장이나 치유는 감춰질 지언쟁 치유되지 않았다.

이런 면을 임영수목사도 “찬양과 경배를 뜨겁게만 해주고 현실에서 변화되는 내용에 대해서 답을 얻지 못하고 순간적인 뜨거움을 느끼기는 하나 교회 밖으로 나가면 식어진다" 고 분석한 바 있다. 그러니 카타르시스만 주는 교회가 되니 더 강한 것 새로운 것을 추구하게 된다. 그래야 젊은이들이 온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젊은이들의 입맛에 맞춰서 카페를 만들고 해와 선교 아웃리치를 하고 웨딩홀도 만들고 세속 문화를 받아드리게 된다. 이러한 시대 속에서 신앙을 너무 개인화 시켜 공동체성을 약화시키는 것에 대하여 반기를 든 것이다. 따라서 자아중심에 서 함께 성장하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것은 한 교회와 목회자의 능력치의 성장과 부흥으로 흐르는 한국교회를 거부한 것이다.

   
 

영락교회 전임자 임영수목사 초청은 처음 

그런 임영수 목사가 지난 4월 24일부터 3일간 열린 자신이 26년전 10년간 시무한 영락교회 산상 기도회 주 강사로 영락강단에 선 것이다. 임영수목사가 강단에 등장하자 교우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의 환영이 있었는 데 교인들은 그동안 적적했던 마음을 환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자 임목사는 감격에 찬 듯 영락교회를 사임한 후 오고 싶었으나 초대가 없었다고 애둘러 말하면서 이렇게 자신을 초청한 김운성 위임목사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한다.

많은 대형교회들이 전임자들 지우기가 일반으로 은퇴를 하고도 나가지 못하거나 안나가는 분들이 한두분이 아니다. 그것은 후임 목회자 의도만은 아니라 당회원(장로)들의 의사도 있기 때문이다. 임명수 목사가 시무 당시 동사 목사로 이성희 목사와 김동호 목사와 같이 동역을 한 적이 있었다. 그후 임영수목사만 남고 두 분은 연동교회와 높은 뜻 숭의교회로 부임하여 목회를 마무리 하고 은퇴를 하셨다.

그런 것에 비하면 임영수목사는 아직도 자신이 원하는 바 대로 아직도 사역을 하고 있는 데 밀려나지 않고 스스로 나온 결과로 보여진다. 그후 같은 서울노회 이성희 목사나 김동호목사가 자신들이 섬겼던 영락교회 강단에 정식으로 초청 받아 교우들과 만남의 시간이 있었는 지는 모르나 임영수 목사가 초청을 받은 것은 처음이라고 밝혔다.

김운성목사 이전엔 전임자 초청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전임인 임영수 목사를 초대하게 된 자세한 사정은 모르나 김운성 목사가 이런 일을 한 것은 매우 귀한 일이다. 그만큼 목회에 대한 자신감과 넒은 포용력이 돋보인다. 이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로 칭찮 받을 일이다.

   
                                                  * 임영수 목사가 강단에 등장하자 박수로 환영하는 교우들 

영락교회 실향민들의 희망에서

서울 영락교회는 지금은 많은 메가 쳐치가 있지만 1990년 이전에만 해도 단 하나의 한국에서 가장 크고 영향력있는 교회였다. 그러나 박조준목사 사임 과정에서 생긴 불행한 시간은 오래갔다. 미국의 김윤국 목사를 해외에서 청빙한 목회도 실패했고 이후 임영수, 이성희, 김동호 동사목회의 실험을 지낸 다.

그후 부임한 이철신 목사 시무기간에도 갈등으로 소진하지만 교회는 위임 목사를 지키고 정년 은퇴와 원로목사로 해드리고 오래 참고 기다린 끝에 전격적으로 김운성목사를 청빙한다. 김운성목사도 쉽게 오지는 않았다. 그 이전에 서울 도림교회등에서 청빙을 받고도 교인들 반대로 부산을 떠나지 못했다.

이는 부산의 가장 가난하고 어렵다는 영도에서 안정된 목회를 이뤄낸 분이고 신앙이나 인품으로 존경을 받는 중진으로 부러울 것이 없었지만 한국교회를 상징하는 영락교회의 안정과 교회의 요청에 영도제일교회는 결국 김운성목사를 보내기도 결정하는 계기가 되고 김목사 부임 후 영라교회는 교단의 중심으로 복귀하여 봉사와 기여를 하는 중이다.

   
 

김운성목사 부임후 교회는 부흥하고 안정화되면서 교단의 중심으로 복귀하여 김순미 장로를 여성 최초로 부총회장으로 만들어 냈고 총회적으로 크게 기여하는 계기가 된다. 또 김운성목사는 2023년 장로회신학대학 이사로 선임되었고 2024년에는 이사장이 된다. 

지난 4월 19일에는 영락교회 설립자이며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목회자중의 한 분인 고 한경직목사 추모기간으로 영락동산에서 추모예배를 드렸고 한경직목사 기념상 시상식도 있었다. 수상자는 인도네시아 선교사인 송광옥 선교사로 독신으로 선교사역을 한 분이다. 

김운성목사가 까다로운 영락교회에 부임한지 오래되지 않치만 지금과 같은 존경을 받고 안정된 목회를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고 보여진다. 우선은 총회 교권에 초연하다는 점이다. 사실 영락교회 목회와 산하시절의 책임자로 이를 통괄하는 것만도 사실 퍽차다. 그러나 그래도 교권정치에 관심갖고 온갖 모임을 조찬부터 시작하여 쫒아다니는 분들이 없지 않다. 

그러나 자신에게 맡겨진 영락교회 목회에 전력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이런 전통은 새문안교회나 연동교회 안동교회등 서울장안의 우리교단을 상징하는 교회 목회자들의 공동적인 현상이다. 무슨 부장이니 임원이니 위원이니 들어가고 싶어하는 이들이 본 받아야 할 대목이다.  

물론 반동성애 차별금지법 반대 운동에 대표로 국회 앞에서의 피켓시위를 한 것에 대해서는 예장뉴스도 비판적인 보도를 한 바 있지만 그것도 소신이라면 누가 뭐라든 균형있게 하면 될일이다. 우리는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만든 단체에 둘러리 서지말고 교단 안에서 그 뜻을 모으고 논의를 하라는 주문이다. 

   
 

김운성목사는 1956년 생으로 정년을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완숙한 목회를 하는 중이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치 않고 장로교단의 대표적인 교회로 모범적이고 중심적인 목회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 3월 2부 예배를 직접 참여한 바가 있었는 데 본당이 꽉찼다. 인근에는 주거지가 없으니 모두 외지에서 올 것인데 정말 대단한 열정과 열심있는 교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2024년 1월 영락교회 당회원 수련회 남한산성에서 

예장뉴스 보도부 ds2sg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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