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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깊은 나무 한창기의 삶

기사승인 2024.05.17  21:5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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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안읍성 뿌리깊은 나무 박물관

   
 

「뿌리깊은나무」, 「샘이깊은물」의 발행인이자 편집자, 한국브리태니커회사 창립자이자 경영인이었던 故 한창기 선생(1936~1997)이 세상을 뜨고 그의 유품들이 기증되여 낙안읍성에 뿌리깊은 나무 박물관에 모아졌다. 한창기라는, 남다른 미의식과 우리 문화에 대한 애착과 열정으로 가득했던 인물을 기리는 다양한 장르의 글과 화보로 꾸며졌다.

"한창기는 직판 쎄일즈맨 제1세대를 조직하고 훈육한 사람이었으며, 몇 세대 앞선 선진적 업적을 남긴 언론-출판인이었으며, 미시적인 관찰력으로 머리카락에 홈을 파듯이 글을 쓰는 문화비평가였다.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생동하는 광고 카피를 쓰는 카피라이터였으며, 심미안이 빼어난 격조 높은 문화재 수집가였다. 판소리를 비롯한 한국 전통음악의 회생을 도운 '비개비'였으며, 전통 의식주의 파괴 없는 창조적 계승을 실천한 사람이었으며, 국어학자가 울고 가는 재야 국어학자였다." - 서문 '기억에 대해' 중에서 -

뿌리깊은나무, 샘이깊은물, 한국브리태니커회사를 매개로 한창기와 각별한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은, 우리 문화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그의 행적은 생각보다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2006년 고인의 십주기에 가진 회합을 통해 두 개의 출판 프로젝트가 기획되었다.

   
 

한창기의 일대기 

그 첫째로, 한창기가 썼던 글들을 모아 책으로 묶은 <뿌리 깊은 나무의 생각>, <샘이 깊은 물의 생각>, <배움 나무의 생각>이 2007년 10월 휴머니스트를 통해 출간됐다. 이듬해인 2008년 출간된 <특집! 한창기>는, 한창기와 가까웠던 사람들이 대한 기억들을 되살려 글을 쓴 글을 모아, 잡지 형식으로 만든 것이다.

사진가 강운구, 전 「뿌리깊은나무」 편집장 윤구병과 김형윤, 전 「샘이깊은물」 편집장 설호정, 디자이너 이상철 등이 함께 엮고, 두 잡지사의 기자와 편집위원, 필자로 참여했던 많은 이들, 이 땅의 문화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창기와 통했던 이들, 또 이런저런 사연으로 그와 우정을 나누었던 쉰아홉 사람이 필자로 참여한 것이다.

1976년 창간된 〈뿌리깊은나무〉는 한글전용, 가로쓰기, 일관된 문화적 시각 등 새로운 시도로 잡지계의 혁신을 일으켰으나, 1980년 8월 신군부 세력에 의해 강제 폐간되었다. 한창기는 낙안읍성 인근에서 태여나 어려서 부터 미군 영어방송을 듣고 독학으로 영어를 시작하여 광주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했다. 이후 유창한 영어실력으로 주한미군 영내에 합법적인 세일즈맨이 된 최초의 사람이라고 한다. 

   
 

최초의 영문서적 세일즈맨

미국 엔사이클로피디어브리태니커사에서 발간한 영문판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한국에 보급해 큰 성공을 거둠으로써, 1968년 한국브리태니커회사의 한국 지사장이 되었고 이후 ‘브리태니커 팔도소리 전집’ 등을 만들어 선보였다. 한창기는 순천중과 과 광주고등학교를 거쳐 1957년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진학했다. 그러나 자신의 진로가 법조계가 아님을 깨닫고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미8군 영내에서 미군들에게 귀국용 비행기표와 영어 성경을 팔았다.

창립 당시 사이클로피디어브리태니커사의 편집부위원장이었던 프랭크 B. 기브니가 사장을 겸임하면서 부사장을 맡은 한창기는 이후 1970년 사장이 되었다. 그리고 1985년 회사를 떠날 때까지 한국 직판업 제1세대의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그리고 뿌리깊은 나무라는 잡지는 처음으로 한글전용, 가로쓰기, 전문 미술집단의 지면배열 참여, 일관된 문화적 시각, 전통문화에 대한 애정어린 탐색 정신과 더불어, 입말과 글말, 지식인 언어와 민중 언어의 조화로운 합일과 국어의 얼개와 어휘에 두루 유념한 편집·교열 등으로 혁신적인 간행물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 잡지는 한편으로 출판·언론인으로서 그의 지향을 선언한 물증이기도 했다. 그러나 〈뿌리깊은나무〉는 한글세대를 중심으로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해가던 1980년 8월에 신군부 세력에 의해 더 이상 용납되지 못하고 강제폐간되었다. 그 때부터 한창기는 출판활동에 진력해 1983년에 남한 땅 종합 인문지리지 〈한국의 발견〉 11권을 완간했다고 한다. 

이 지리지는 조선 시대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 東國與地勝覽〉 이후 최초로 간행된 본격적인 인문지리지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제1회 '오늘의 책' 수상작으로 선정되고, 〈한국일보〉의 한국출판문화상을 수상했다. 그가 관심갖은 것은 출세하고 성공한 이들의 삶이나 자취가 아닌 민초들의 이야기였다. 민중들의 삶에 대한 애완을 갖고 잡지나 연구소 문화 예술을 복원한 것이다. 

   
 

한글을 사랑한 사람 

그는 한국어와 한국문화의 스승은 근대화의 세례를 덜 받은 '무식한' 촌노인들이라고 통찰해 그들이 구술한 '나의 한평생'을 엮어내기로 하고, 〈뿌리깊은나무 민중 자서전〉 시리즈를 1982년부터 발간하기 시작했다. 1991년까지 모두 20권이 나온 이 시리즈도 〈한국일보〉의 출판문화상을 수상했다. 전통음악을 음반에 담고, 그 해설과 함께 악보, 사설과 가사를 완벽히 채록해서 수록한 해설집을 냈다.

유파가 서로 다른 판소리 다섯 마당을 각각 모은 〈브리태니커 판소리 전집〉·〈뿌리깊은나무 판소리 다섯 마당〉을 비롯해 〈뿌리깊은나무 산조 전집〉·〈뿌리깊은나무 슬픈 소리〉·〈브리태니커 팔도소리 전집〉·〈해남 강강술래〉 등을 만들어 선보였다.

〈브리태니커 판소리 전집〉은 한국방송공사(KBS) 국악대상을 수상했다. 그는 이미 1974년부터 '브리태니커 판소리 감상회'를 정기적으로 열어 100회가 되던 1978년에 끝냄으로써 판소리의 보존과 보급에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1984년 11월 잡지 〈샘이깊은물〉을 창간했는데, 이 잡지는 〈뿌리깊은나무〉의 정신을 이어받았으되, 주된 독자를 여성으로 상정한 종합 여성문화잡지로 출발했다.

이 잡지는 한국의 기존 여성잡지와는 달리 여성잡지의 긍정적 가망성을 열어 보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는 아직 제국주의 일본의 잔재를 미처 털어내지 못하고 있던 한국 출판물의 내용과 형식에 진정한 근대성과 주체성을 부여한 최초의 출판 언론인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출판활동을 통해 전통문화의 보존과 계승의 토대를 마련하는 데에 평생을 바쳤다.

한글학회·외솔회·한국박물관회의 회원이었으며, 재단법인 언어교육의 이사를 지냈다. 사후 보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늦었지만 조상들이 남긴 귀중한 대표적인 유산 낙안읍성앞에 그의 박물관이 세워진 것은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예장뉴스 보도부 ds2sg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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