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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rge E. Ogle, 한국명: 오명걸 목사 부고

기사승인 2020.11.19  16:3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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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orge E. Ogle, 한국명: 오명걸 목사 부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총무 이홍정 목사)는 지난 11월 15일(일), 조지 오글(Geoge E. Ogle) 목사가 미국 콜로라도주에서 91세 나이로 소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애도의 서신을 발송했다.

   
 

조지 오글 목사는 미연합감리교회로부터 1954년, 한국 인천에 선교사로 파송되었다. 그는 소외받고 고통당하는 이들과 함께 하신 예수의 삶을 따라 노동자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삶을 살았다. 인천산업선교를 시작했고, 늘 노동자들의 인권을 위해 투쟁했으며, 가난과 비움, 헌신의 영성을 보여주었다.

특별히 조지 오글 목사는 불의에 저항하고 진실을 말하기 두려운 시절, 1974년 본회의 10월 첫 번째 목요기도회에서 인혁당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들의 억울함을 호소했고, 결국 그해 12월 14일에 미국으로 강제 추방을 당했다. 그는 미국에 추방당해 있는 중에도 인혁당사건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행적을 기리며 2020년 6월, 국민포장을 시상했다.

오글 목사는 1929년 1월 17일 광부들의 마을인 펜실베이니아주 핏케언에서 여섯 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1954년 듀크 신학교를 졸업한 그는 연합형제교회에서 목사 안수(편집자 주: 오글 목사는 연합형제교회와 감리교회가 통합된 교단인 연합감리교회의 북일리노이 연회 소속이다.)를 받은 후,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에 선교사로 파송 받았다.

한국에 도착한 오글 목사는 공주와 대전 지역의 감리교 학교에서 3년간 영어를 가르치며, 복음을 전했다. 감리교미래정책연구원 원장인 이상윤 목사는 오글 목사를 “그 시기의 한국을 누구보다 잘 이해했던 선교사 가운데 한 분”으로 기억했다. 듀크 신학교에서 만난 마경일 목사를 통해 감리교단의 지도부를 설득하여 인천 화수동의 초가삼간을 매입하고, 도시산업선교회의 전신인 인천산업전도회(Incheon Industrial Evangelism)를 조직했다. 이는 훗날 인천도시산업선교회(Incheon Urban Industrial Mission)의 모태가 되었다.

   
* <조지 오글 목사 추모행사 안내> 일시:11월 27일(금) 15시 대한감리회 본부 교회에서 주관:기감 본부 선교국

1971년 오글 목사는 도시산업선교회의 리더쉽을 한국인에게 넘겨주고, 박사학위를 마치기 위해 미국으로 돌아와, 위스컨신 주립대학교에서 1973년 학위를 취득했다. 그리고 다시 서울대학교의 초청을 받아 5년 임기의 교편생활을 시작했다. 미국으로 돌아온 오글 목사는 애틀란타에 소재한 에모리 대학교의 캔들러 신학교에서 1975년부터 1981년까지 교편을 잡았다. 그리고 이어 연합감리교 총회 사회부의 사회 경제 정의 담당 디렉터로 섬기며 다양한 사회정의 사역을 지속하다 1991년 은퇴했다.

오글 목사는 1984년 대한기독교감리회 창립 100주년 기념식에 강사로 초청받아 추방 후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고, 1998년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과 1999년 부산 민주공원 개원 등에 초청받아 다시 한국을 방문했다. 그리고 2002년 한국을 방문하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로부터 인권상을 수상했다.

1972년 10월 17일 한국에 유신헌법이 선포되자, 대학가에는 시위가 끊이지 않았고, 이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 목회자들과 교수들도 공공연히 체포되었다.   오글 목사는 기독교 수감자 가족들이 목요일마다 주최하던 목요기도회에 참석해, 인혁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사형을 선고받은 이들의 무죄를 주장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했다는 이유로 1974년 12월 14일 한국에서 추방되었다. 그리고 1975년 4월 9일, 대법원의 인혁당 사건 선고 확정 18시간 만에 한국 정부는 관련자 8명 전원의 사형을 집행했다.

그의 삶이 지역과 경계를 넘어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기를 소망하면서, 부인 도로시 오글 여사과 유가족에게 위로의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이 서신은 미국연합감리교회(UMC), 기독교대한감리회(KMC), 미국그리스도교협의회(NCCC-USA) 등에도 발송

* 다음주 화요일(11/24) 오전 11시,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소 지하 이제홀에서 추도의 시간을 가질 예정

   
                    * 인천 감리교 산업선교 초기 실무자 조화순, 조승혁목사와 오글 목사

                    도로시 오글 여사님께,

본회는 조지 오글(George E. Ogle, 한국명: 오명걸) 목사님께서 지난 15일, 미국 콜로라도에서 91세로 소천하셨다는 소식을 접하고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1954년 미연합감리교회의 선교사로 한국 인천으로 파송된 오글 목사님은 소외 받고 고통 당하는 이들과 함께 하신 예수의 삶을 본 받아 노동자들과 함께 기뻐하고 함께 우는 (롬 12:15) 삶을 사셨습니다. 인천산업선교를 시작하셨고, 늘 ‘노동자들의 인권보장 없이는 민주화가 실현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의 가난과 비움, 헌신의 영성은 당시 고난 받는 이들과 함께 투쟁하였던 많은 이들을 깊은 영감으로 이끌어 주었습니다.

불의에 저항하고 진실을 말하기 두려운 시절, 1974년 본회의 10월 첫 번째 목요기도회에서 목사님은 인혁당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들의 억울함을 호소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중 가장 보잘것없고 약한 자를 통해 오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결국 1974년 12월 14일, 불의한 군사정권에 의해 강제 추방당하셨지만, 미국에서도 인혁당사건의 진실을 알리기 위하여 고군분투하셨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기억하고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이들, 억울한 이들과 함께 하면서 불의에 저항하신 목사님, 우리 모두에게 참된 종교인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작금의 한국교회를 돌아볼 때, 목사님의 삶과 영성이 참으로 큰 가르침으로, 큰 은혜로 다가옵니다. 목사님의 삶이 지역과 경계를 넘어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면서, 유가족 위에 하나님의 평화와 위로가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2020년 11월 18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이홍정 목사
                                   한국기독교민주화운동 이사장 안재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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