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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츠바이크가 쓴 에라스무스 평전

기사승인 2024.05.02  00: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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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를 앞서간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

에라스무스는 르네상스 시기의 가장 중요한 학자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인물로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사생아로 태어나 수도원에서 양육되었으며, 20세에 수도사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출생 배경에 대해 콤플렉스가 있었는 데 학자들이 에라스무스가 언제 태어났는지에 대해 계속적으로 연구하는 이유기도 하다.

그러나 그의 부친은 사제였고 모친은 의사의 딸로 자기 시대의 교회를 원시 그리스도교의 단순한 신앙으로 되돌려 놓으려 한 사람이다. 1516년 헬라어 신약성서를 발행하였고, 훗날 그것으로 루터가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하는데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그의 유년기에 두 가지 사건이 있었는 데 첫째는 12살부터 5년간 생활했던 데벤터(Deventer)에서 고전에 대한 공부를 하여 이전에 기술된 기독교 사상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갖추게 된 시기였다.

두 번째로는 ‘부모의 죽음’에 대한 것으로 그의 친구 세르바티우스에게 편지한 내용을 보면 ‘부모의 죽음’이 그의 신학 형성에 크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루터와 에라스무스에게 있어 신앙 체험의 공통점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에라스무스는 자신이 젊은 날 죽음이라는 말을 듣기만 해도 두려워 떨었다고 서술하고 있다. 그것은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두려움’의 종류이다.

   
 

여기서 루터와 에라스무스의 차이점을 볼 수 있는데, 루터는 그 두려움을 ‘은총’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다.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는 뜻이다. 반면에 에라스무스는 신앙적 교육과 훈육을 통해 두려움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하였다. 이것이 루터와 에라스무스의 자유의지 논쟁까지 이어지는 근본적 다른 점이었다고 볼 수 있다.

에라스무스가 살았던 시대는 ‘르네상스’(인문주의)로 “재생”또는 “부활”을 뜻하는 프랑스어로 에라스무스는 이탈리아 르네상스보다는 알프스 북부의 르네상스에 대하여 더 관련을 가졌다고 한다. 따라서 에라스무스가 성경을 보는 관점과 교육 사상, 고전의 저자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문학적 비평의 기술 습득은 르네상스의 시대정신에 영향을 받았으며 그는 스콜라 철학과 대립했다고 볼 수도 있다.

르네상스라는 언어는 15세기 이탈리아 대학생들 사이에 통용되었던 일종의 은어로서 고전어와 고전 문학을 가르치는 대학교수나 중등학교 교사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가, 16세기 이후에는 교사만이 아니라 고전학문을 배우는 학생들과 연구자들에게도 확대 적용 되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을 살아가기 위해 이러한 ‘교양’, ‘교육’, ‘학문’은 꼭 필요한 수단이었다.

시간이 흐른 뒤에는 인문주의들은 부정적으로 평가되었다. 인간보다 우월한 신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퍼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세속적인 인문주의들이 퍼지면서 이러한 관점들은 가톨릭과 개신교에게 환영 받지 못하였고, 에라스무스 또한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 영향을 받아 오해를 받기도 한다.

본래 에라스무스는 다른 어떤 인물보다 루터와 가까웠다. 하지만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성 교회당의 문에 “95개조 논제”가 게시되기 이전부터 에라스무스는 1516년 12월 프리드리히의 지도 신부였던 슈팔라틴으로부터 루터가 자신의 로마서 해석을 논의하면서 율법 전체를 거부하고 있다는 내용을 들은 이후 이미 루터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에라스무스는 95개조 논제를 본 후 루터주의자에게 편지를 썼다.

연옥에 관한 몇가지 점들을 제외하고 모든 이들에게 인정받을 것이라는 말을 남기며 일정부분 루터의 경해와 동일함을 나타냈다. 하지만 루터의 과격한 개혁과 극단적인 태도에서는 충고를 남기기도 했다. 1520년 에라스무스는 루터와 내통하였다. 루터파라고 화살이 쏠리게 되고 그 오해는 풀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럴수밖에도 없었던 것이 에라스무스가 1522-1524년동안 교회의 관행을 풍자로 비판하는 내용의 저서를 썼기 때문이다.

인문주의자이며 런던 주교였던 커스버트 턴스톨이 에라스무스에게 루터를 반박해 주기를 간청하는 편지를 보내왔고, 많은 주교들이 그랬기에 할 수 없이 에라스무스는 ‘자유 의지’에 대해 편지를 썼다. 루터와 에라스무스의 자유의지의 내용의 각각 이러하다. 플라톤적 이원론에 입각하여 인간이 육체와 혼으로 구성되었고, 인간의 혼은 다시 이성과 의지로 구성된다고 보았다.

에라스무스에 따르면 인간의 자유의지와 이성은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선물이라고 한다. 자유의지가 구원의 여부를 선택할 수 있게 하는 능력이라면 이성은 선악을 판별할 수 있게 하는 능력이다. 쉽게 말해 선을 행하고 추구하는 것은 자유의지이고 그것을 분별할 수 있는 것은 이성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 스스로가 구원으로 도달할 수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자유의지를 비판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두 가지의 주장을 내 놓았다. 첫째는 만약 자유의지가 없다면 선택권이 없는 인간을 정죄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주장이다. 둘째로는 신의 의지와 인간의 의지가 구분되었다고 주장한다. 마가복은 14장의 말씀을 통해 만약 신이 모든 것을 한다면 유다는 필연적으로 배반했겠지만 유다는 자신의 의도를 바꿀 수도 있었다고 주장한다. 에라스무스는 루터처럼 인간의 자유의지를 단호하게 거부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우신예찬’

우신예찬은 그 당시 현자이며 위선자로 불리웠던 종교계 교황과 가톨릭 사제, 철학자를 비꼬는 풍자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철학서라 할 수도 있고 에세이라고도 할 수 있는 데 소설은 아니지만 주인공이 나오는데 그가 바로 愚神으로 어리석음의 여신이다. 수도원에서 수학하여 사제 서품을 받았지만 사제는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학구파로 공부를 많이 하였고 치우치지 않고 신학과 이성, 신학과 철학의 조화를 도모하였다.

또 자유로운 인문주의자이자 평화사상의 선구자로 살았다. 가톨릭교와 개신교의 적극적인 환영을 받지만 이에 호응하지 않아 양측으로부터 공격을 받는 다. 그러나 결국 은 그는 신교를 받아들인 바젤를 떠난 다. 그럼 ‘우신예찬’ 에서 말하는 우자는 누구인가? 어리석은 자, 우자는 솔직하고 정직하다. 자신의 희노애락 감정을 숨김없이 나타내되 재담, 폭소, 웃음으로 표현한다. 모든 일을 자신의 일로 생각한다.

반면에 현자는 머리에 든 것이 많아 기회를 엿본다. 세상 물정을 모르고 재미가 없고, 자신만이 옳다는 교만에 가득 차 친구가 없으며 심각하여 즐거움을 모른다. 놀 줄도 모른다. 그러면서 자신의 출세를 위하여 한 입으로 두 말을 하며 아부하고 두 마음을 가진다. 그래서 짐승이라 한다. 현자들은 누구인가? 대표적인 현자는 선생, 시인, 수사학자, 저술가, 법률가, 변증가, 철학자, 신학자, 가톨릭 사제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우신예찬은 우자에 대해 칭찬하고 현자에 대해서는 신랄하게 비판한다. 가장 똑똑하지만 가장 어리석은 자라 한다. 두 입, 두 마음을 가진 위선자라 한다. 신학자는 많이 아는 척하지만 엉터리이고, 수도사는 수많은 교파와 자기만의 전통을 고집하고, 추기경은 재산을 모으는데 혈안이 되어 있고, 교황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교황의 자리를 지키려 한다. 사제들은 수익을 올리는 데 밤낮을 가리지 않고, 법을 이용하여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간다. 교황도 역시 예배를 통해 금전을 부지런히 모은다. 그야말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결코 행복하지 않다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일까? 우신예찬은 어리석은 자, 곧 바보, 멍청이, 얼간이, 천치 등이라 한다. 이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귀신이나 악귀나 유령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장래 일을 걱정하지 않고, 생각 없이 자연의 본능에 따라 즐기며, 장난치고 노래하며, 어디를 가든지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재미와 놀이와 웃음을 선사한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고 환영한다. 군주도 이들을 총애하고 좋아한다. 군주들이 원하는 것, 즉 재담과 웃음과 폭소와 즐거움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지혜를 추구하는데 열심을 내는 현자는 행복과 거리가 먼 사람이다.

어리석은 자의 행복은 우신이 준다.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다. 어리석은 자가 근심, 걱정 없이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고 무지 속에서 자연의 본능대로 살 수 있는 것은 모두 우신 덕분이다. 우신이 자기 자매와 형제들을 시켜 어리석은 자에게 행복을 준다. 자기도취, 아부, 망각, 태만, 쾌락, 경솔, 방탕은 여시종(자매)이고, 광란, 숙면은 남신(남자형제)들이다.

저자 에라스무스가 당시 종교인인 사제와 수도사, 교황의 위선을 비판하였지만 기독교의 진리는 받아들였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을 아주 높게 평가한다. 하지만 우신은 기독교와는 상관이 없는 데 기독교의 하나님이라고 할 수 없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우신처럼 자기도취, 아부, 망각, 특히 태만, 쾌락, 경솔, 방탕, 광란을 주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 에라스무스는 기독교는 어리석음과 가장 가까운 종교라 한다. 지혜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한다.

저자가 정의하는 우자가 무지하고 본능적으로 비이성적, 비합리적인 삶을 미친 듯이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기독교도 그럴 것이다. 기독교도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전혀 실존하지 않는 허구의 하나님이라는 신에게 자신의 목숨을 바쳐 충성 헌신하며, 비이성적,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신화 같고 소설 같은 성경을 믿고, 인간에 지나지 않는 예수를 구세주라 떠받들며 미친 듯이 봉사하고 헌신한다는 점에서 저자가 정의한 우신과 동일하다. 그래서 저자는 기독교를 어리석음의 종교로 정의했다.

저자가 기독교인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보는 기독교는 어리석은 자들이 모인 종교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저자가 바라본 기독교인은 “신앙을 위해서라면 전 재산도 아낌없이 바치고, 부당한 대우나 모욕도 아무렇지 않게 여기며 속아도 참고, 친구와 원수를 가리지 않‘는 사람이다. ’쾌락을 혐오하고 수많은 금식과 철야와 눈물과 고생과 천대를 감수하고 삶을 멸시하며 죽는 날만 기다리는‘ 사람이다.

세상 사람들은 오직 물질을 숭배하고 육체의 쾌락을 탐닉하며 영혼은 없는 듯이 생각하는데 비해 기독교인들은 있지도 않은 허구의 신 하나님을 최고로 여기며 최우선에 두고 육체에 관심이 없으며 돈을 돌 보듯 하고 영혼을 중요하게 여기니 기독교인들이 더 미쳤다고 보는 편이 맞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기독교인은 확실히 우자이다. 더욱이 사도들은 더욱 미친 자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수고하고 온갖 박해를 받고 목숨까지 바쳤으니까 말이다.

저자는 기독교인이 받을 상은 광기라고 하는 데 광기는 미치는 것이다. 열망하고 갈망하는 것이 광기다. 무엇에 미쳐 있는 동안은 행복하다. 맞다. 사랑에 미쳐 있는 동안 행복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미쳐 있는 동안 행복하다. 저자의 진단처럼 무엇에 미친다는 것은 최고의 행복이다. 기독교인은 무엇에 미쳐 있을까? 기독교인의 광기는 무엇일까? 진정한 기독교인은 하나님에게, 예수님에게 미쳐 있다. 천국의 삶을 바라보며 천국에 미쳐 있다.

’영적인 것은 육체적인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모든 면에서 우월하다,” 저자의 말이다. 그렇다면 영적인 것,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게 미쳐 있고, 천국에 미쳐 있는 사람은 세상 사람들이 누리는 그 어떤 행복보다 더 큰 행복을 누리게 된다. 이 행복은 기독교인만이 누릴 수 있다. 세상은 줄 수 없다. 세상의 것으로 행복을 주는 우신도 줄 수 없다. 우신의 관점에서 기독교인은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다.

   
 

에라스무스 전기를 쓴 슈터판 츠바이크는 누구인가?

그는 1881년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 부유한 유대계 방직업자 아버지와 이름난 가문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빈에서 높은 수준의 교양교육과 예술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어린 시절부터 섬세한 감각과 문학적 감수성을 지녔던 그는 수많은 고전작품을 읽으며 해박한 지식을 쌓았고, 청소년기에는 보들레르와 베를렌 등의 시집을 탐독하면서 시인으로서의 습작기간을 거쳤다. 대학에서 독문학과 불문학, 철학, 사회학, 심리학 등을 두루 섭렵했으며, 특히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이런 배경으로 스무 살의 나이에 첫 시집 『은빛 현』으로 문단에 데뷔하여 일찌감치 작품성을 인정받는 작가로 자리매김한 그는 세계 여러 나라를 자유롭게 여행하면서 한 시대를 풍미하는 여러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드높은 정신세계를 구축했다. 『은빛 현』을 필두로 수많은 소설 및 전기들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1938년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하자, 유태인 탄압을 피해 런던으로 피신했다가 미국을 거쳐 브라질에 정착한다.또한 2차 세계대전 이전 백만 부 이상의 판매를 기록한 대중적인 작가이자 다른 나라 언어로 가장 많이 번역된 작가로 독일/오스트리아 문학사에 이름을 올리고 있기도 하다.

츠바이크는 ‘벨 에포크’라 일컬어지는 유럽의 황금 시대에 활동했다. 예술과 문화가 최고조로 발달했던 그 시기를 그는 진정으로 사랑했다. 그러나, 그토록 사랑했던 유럽이 한방의 총성으로 촉발된 세계대전을 통해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눈앞에서 목도하게 된다. 황금 시대의 빛과 영광을 박살낸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을 구축한 그들 유럽인들이었다. 이 때의 심경은 자신의 삶을 중심으로 유럽의 문화사를 기록한 자전적 회고록 『어제의 세계』에 잘 드러나 있다.

극심한 상승과 하강을 삶을 통해 모두 경험한 이후, 섬세한 그의 심성은 더 이상 부조리한 세계에서 버티지 못하고 고난의 망명생활 속에서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1942년 2월 브라질의 페트로폴리스에서 부인과 동반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종종 ‘평화주의자’ 또는 ‘극단적 자유주의자’라는 평을 받던 그는 “나는 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 이 시대는 내게 불쾌하다”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자유로운 죽음을 선택하였다.

비극으로 생을 마감했지만, 그가 쓴 수많은 소설과 평전은 오늘날까지도 세계 여러나라의 언어로 번역되어 수많은 독자들로 부터 사랑을 받고 있으며, 상당부분 영화화되기도 했다. 또한 다른 예술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쳤는데, 대표적인 예가 천재 감독 웨스 앤더슨의 2014년 작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THE GRAND BUDAPEST HOTEL)이다. 앤더슨은 이 영화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영화는 츠바이크의 소설 '초초한 마음'의 첫 단락을 차용해서 시작하며, 엔딩 크레딧에서 “inspired by the writings of Stefan Zweig” 라는 문구를 삽입하여 그 사실을 확고히 했다.

폭력과 야만의 시대에 에라스무스로 답하다

20세기 최고의 전기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는 예리한 시선으로 에라스무스의 삶을 추적한다. 츠바이크는 혼인이 금지된 신부의 자식, 수도원에서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내고 스물여섯에 신학교를 빠져나와 프랑스와 영국,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 여러 나라를 전전한 에라스무스의 생애에서 ‘자유’라는 고결한 가치를 발굴한다. 에라스무스는 실로 그 어느 것에도, 그 누구에게도 구속되려 하지 않았다. 편협한 광신은 그가 가장 멀리한 것이었고, “난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마지막까지 고수하며 자기 자신만을 대표하는 자세로 살아간다.

『에라스무스 평전』은 히틀러가 독일 정권을 장악한 1934년에 출간되었으며, 이듬해 츠바이크는 나치를 피해 해외로 도피한다. 망명을 앞두고 종교전쟁의 혼돈 속에서 모든 극단을 거부하며 화합을 도모하고 인류애의 가치를 내세운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의 삶을 거울삼아 폭력으로 얼룩진 광란의 시대를 고발하고 평화를 향한 자신의 신념을 밝힌 것이다.

에라스무스의 대표작인 『우신 예찬』은 ‘우매함’이라는 인물을 통해 당시 사치와 향락에 빠진 교회를 신랄히 풍자한 계몽주의의 효시로 꼽힌다. 동시에 이 책은 가톨릭교회에 대한 불만을 품고 있던 민중의 가려운 곳을 긁어 주면서 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대중의 의식 깊은 곳에 개혁을 향한 의지를 심어 주었다. 에라스무스의 또 다른 중요한 업적은 독자적인 성경 번역이었다.

그때까지 성경을 옮기는 일은 교황청의 허락하에 이루어지는, 교회의 권위를 상징하는 행위였다. 루터의 독일어 성경 번역에 15년이나 앞선 에라스무스의 라틴어 성경 번역은 그리스도의 삶과 멀어지고 있는 교회를 비판하고 ‘그리스도교 신앙의 뿌리 발굴’이라는 자신의 지론을 실천한 것으로, 그가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자연히 복음주의 신앙의 기틀이 되었다.

잘 알려져 있듯, 1517년 10월 31일 루터가 아흔다섯 항목의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교회 정문에 때려 박으며 종교개혁의 나팔이 울린다. 그러나 그 일을 예비한 것은 에라스무스였다. “가톨릭 신학자들이 격분해 말하듯 ‘에라스무스가 알을 낳아 주었고, 루터가 그것을 부화시킨 것’이다.” 루터 스스로도 “누구든 자신의 생각이 에라스무스의 사상으로 가득 차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에게서 배우지 않은 자 누구이며, 그에게 지배받지 않는 자 어디 있겠습니까?”라며 에라스무스가 자신을 지지해 주기를 간청한다.

그렇지만 에라스무스는 루터의 가톨릭 비판이 옳다고 생각하면서도 그의 편을 들지 않는다. 루터와 종교개혁가들의 거친 격정과 가톨릭교회에 대한 증오 섞인 비난은 그가 가장 멀리하는 바였기 때문이다. 루터가 가톨릭교회에 반기를 든 이후 로마에서는 그를 향한 파문장이 마련되고, 많은 개혁가가 종교재판에 넘겨지며, 곳곳에서 화형대의 불길이 치솟는다. 한편 민중의 거센 혁명 의지를 마주한 개혁가들은 타락한 교회를 바로 세우겠다는 당초 목적과 달리 맹목적인 광신에 사로잡혀 점차 격렬해진다.

그렇게 그리스도교, 그리고 유럽은 둘로 갈라진다. 하지만 에라스무스는 그런 혼란과 분열에 빠져들기를 거부한다. 이제 시대는 끔찍한 증오로 묻는다. 교황이냐 루터냐, 가톨릭 편에 설 것인가 신교의 길을 걸을 것인가, 교리인가 복음인가. 정신의 자유와 내면의 독립을 추구한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에겐 가톨릭의 부패와 타락도, 루터와 신교의 맹목적인 혁명 의지도 견디기 힘든 것이었으리라. 정신적인 것, 지고한 인류애를 바탕으로 한 인문주의를 내세운 에라스무스는 양편을 화해시키고자 노력한다.

교황청에 루터를 파문하는 것은 가혹한 처사이며 루터가 지적한 오류와 잘못을 논의할 종교회의를 열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편지를 보내고, 반대로 루터에게 화급하고 거칠게 나서지 말 것을 조언한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것이 에라스무스의 비극이다. 정신의 인간 에라스무스는 갈등을 중재할 뿐 해소하지 못한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5세가 보름스에서 종교회의를 열어 루터를 불러들일 때 그는 자신의 연구실에 머물렀다. 추방당한 루터가 복음을 앞세워 교황과 가톨릭교회의 탈선을 비판하며 그에게 자문할 때에도 자신은 루터의 글을 정확히 읽지 않았다며 빠져나간다. 이와 동시에 교황이 종교전쟁에 내몰리는 독일 민중을 위해 앞으로 나설 것을 요구하지만 역시 이런저런 말로 둘러댈 뿐이다. 에라스무스는 언제나 결정적인 언사를 피하고, 중립을 지킨다.

바로 여기에 평전의 대가 츠바이크의 진가가 드러난다. 츠바이크는 인물을 찬양하거나 그의 강점만을 드러내지 않고 위대함과 그 한계를 여과 없이 서술한다. 덕분에 역사 속 잠들어 있던 인물이 생동감을 얻고, 읽는 이는 그의 삶을 입체적으로 살필 수 있다. 『에라스무스 평전』에서도 에라스무스와 인문주의의 성과는 물론 미흡한 부분까지 낱낱이 드러내 보인다.

양쪽에 모두 관계하고 있는 에라스무스 내면의 갈등, 평화와 화합을 향한 고뇌, 양편과 함께 허물어져 가는 그의 상황을 밀도 높게 그려 냈다. 이에 더해 겉으로 드러난 육체에서부터 가장 안쪽 신경에 이르기까지, 에라스무스와 완전히 다른 기질을 타고난 마르틴 루터를 등장시킨다. 판이한 두 캐릭터와 섬세한 심리 묘사, 역사를 바탕으로 한 흥미진진한 스토리는 독자를 단숨에 16세기로 인도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심심치 않게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자리는 도덕적 위기의 시대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예약되어 있다”라는 단테의 말이 유행하곤 한다. 분명한 입장을 요구하는 이들에게 양쪽 모두에 관계하며 설득하려 드는 에라스무스는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자리를 예약한 인물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편 가르기가 극에 달한 시기, 우리 편 아니면 적이라고 몰아붙이는 시대, 격렬한 감정이 휘몰아치는 세상에, 이성의 힘으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고 믿은 에라스무스의 생애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1차 세계대전을 겪고 반전주의자가 된 츠바이크는 에라스무스의 모습을 빌려 나치의 폭력에 항거하고 평화와 화합의 정신을 일깨우고자 했다. 20세기 인물 츠바이크가 16세기 인물 에라스무스에 관해 쓴 것이지만, 두 사람이 처한 상황과 그들이 보여 준 삶의 자세는 시공을 초월해 대립과 반목, 갈등과 혐오로 얼룩진 사회에 경종을 울려 준 것이다.

예장뉴스 보도부 ds2sgt@daum.net

<저작권자 © 예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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